[리뷰] 바흐 3시간, 그는 활을 든 검객

입력 : 2012.05.16 23:52

첼리스트 비스펠베이바흐 무반주 모음곡

올해 5월 음악계는 '바흐 주간'으로 불러도 좋겠다. 네덜란드 출신 첼리스트 피터 비스펠베이(50·사진)가 15일 예술의전당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6곡)을 완주하고,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4)도 같은 날부터 4차례에 걸쳐 바흐의 무반주곡 순례에 들어갔다. 이렇듯 '음악의 아버지'는 사후 250여 년이 지나도 여전히 후세 연주자들에게 길고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비스펠베이는 1990년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을 데뷔 음반으로 발표하고 1998년에 이어 올해 세 번째로 같은 곡을 녹음하는 '바흐 중독자'다. 전곡 연주에만 꼬박 3시간이 걸리는 무반주곡 전곡 연주회를 200여 차례나 치러낸 '첼로의 마라토너'다.

15일 끝까지 단추를 채운 흰색 셔츠와 검은색 조끼의 단정한 옷차림으로 반주자도, 악보도 없이 홀로 예술의전당에 올라온 그는 이마저 일상이라는 듯 사무용 의자에 편안하게 앉았다. 첫 모음곡의 첫 곡인 '전주곡(Prelude)'을 연주하면서 입 모양으로 선율을 나지막하게 읊조리고, 미소를 잃지 않으며 간간이 어두운 객석을 조용히 응시하는 눈길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애써 힘주어 강변하는 대신, 불필요한 힘은 모두 덜어내고 능수능란하게 강약과 빠르기를 조절하는 모습은 '활을 든 검객'을 연상시켰다. 프랑스 무곡에서 유래한 '쿠랑트'에서는 날렵한 왼손 운지(運指)를 바탕으로 급류가 몰아치는 듯한 짜릿함을 선사했고, '사라방드'에서는 거꾸로 정적마저 운치 있게 살렸다. 모음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그는 종착점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일깨우듯 경쾌하게 '속도전(速度戰)'을 펼쳤다.

비스펠베이는 바흐의 독주곡이 모음곡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요체(要諦)는 춤곡에 있다는 걸 대담무쌍하고 창의적인 접근으로 이날 보여줬다. 수없는 반복을 거쳐 작품에 대해 뚜렷한 확신을 지니고 있을 때만이 비로소 자유로운 해석도 가능하다는 걸 실증한 무대였다. 오후 8시에 시작한 독주회가 오후 11시에야 모두 끝났을 때, 청중의 갈채에 무대에 불려 나온 그는 다시 첫 곡인 모음곡 1번의 '전주곡'을 앙코르로 들려주었다. 마치 길이 끝난 곳에서 다시 길이 시작한다는 걸 일러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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