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야해진 오페라

입력 : 2012.05.02 23:44

살굿빛 속옷 '룰루' 반라 설정에 깜짝
노출·폭력 범람은 같은 레퍼토리를 현대적 재해석한 것 그리고 음반보다 이젠 DVD가 팔려

'팜므 파탈'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룰루'의 한 장면.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공연 현장에 있었지만, 이 공연이 영상물(DVD)로 나올 줄도, 한국에 수입될 것이라고도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2010년 11월 스페인의 리세우 극장에서 공연된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룰루'의 개막 당시 저는 극장 구석에 앉아 있었지요.

프랑스 출신 떠오르는 샛별인 소프라노 파트리샤 프티봉이 뭇 남성을 파멸로 몰아넣는 치명적 팜므 파탈(femme fatale)인 룰루역을 맡았습니다. 프티봉은 이전까지 모차르트와 바로크 레퍼토리에서 장기를 보였기에 그의 역할 변신만으로도 개막 이전부터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16세 이하 입장 금지'라는 안내가 붙었던 당시 무대는 상상 이상의 파격으로 가득했지요. 막이 열리면 붉은 조명의 거리에는 '섹스숍' 같은 네온사인이 빛나고 있습니다. 프롤로그부터 여주인공 룰루는 주요 부위를 가리는 살굿빛 속옷을 입고 반나체(半裸體)의 설정으로 돌아다닙니다.

과도한 선정성이라고 눈살을 찌푸릴 수 있지만, 주변 남성을 심장마비와 자살로 몰아가는 극의 흐름상 필요한 설정이기도 합니다. 12음기법에 바탕을 둔 현대 오페라의 문제작이라는 음악적 의의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팽팽한 긴장감은 오로지 무대로만 향합니다.

최근 유럽의 오페라는 고전적 우아함이라는 옛 덕목을 잊은 채 나체나 폭력으로 가득한 파격으로 치닫기 일쑤이지요. 란제리 차림의 여성들이 대거 등장했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돈 조반니'(모차르트), 집단 성행위를 연상시키듯 도발적이었던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리골레토'(베르디) 등이 대표적입니다. 왜 폭력과 노출이 오페라에 범람하는 것일까요.

하늘 아래 새로운 작품은 없고, 오페라의 레퍼토리도 포화 상태에 이른 지 오래입니다. '돈 조반니'에서 악당 주인공이 상대 여성들을 희롱하는 장면도, 저승으로 끌려가는 결말도 이미 수없이 보았습니다. 원작의 결을 그대로 살리는 훈고학적 해석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찢고 비틀고 뒤집는 현대적 재해석이 자연스럽게 우세해진 것이지요.

음반 중심의 '듣는 시대'에서 영상물(DVD)과 인터넷 중심의 '보는 시대'로 세상이 달라진 것도 이유입니다. 거액의 예산으로 오페라 전곡 음반을 녹음하느니, 차라리 오페라 극장에서 현재 공연 중인 작품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 편을 음반사도 선호하는 것이지요. 오페라 전곡 음반은 가뭄에 콩 나듯 줄어든 반면, 오페라 공연 영상물은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동안 '청정 지역'으로 간주됐던 클래식 음악도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것이 사랑받는 우리 시대에는 예외일 수 없는 것이지요.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