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술 자존심'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마저…

입력 : 2012.04.23 01:56

11년간 콘트라베이스 입학생 44명 중 19명 불법 과외한 음대교수 구속
입학 사례비 1인당 8000만원… 해당교수 "악기값으로 받은 것"
국산 악기를 이태리제라 속여1억8000만에 팔아 넘기기도… 경찰, 다른 교수까지 수사 확대

2010년 3월 음대 진학을 위해 재수를 하던 A(22)씨는 음악학원 등에서 "콘트라베이스로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하려면 이모 교수에게 레슨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지인을 수소문해 이 교수의 부인이 운영하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비밀 교습실'로 갔다. A씨는 8개월간 '비밀 교습실'에서 시간당 15만원을 내고 이 교수로부터 40여 차례 레슨을 받았다. 국립대인 한예종의 이 교수는 현행법상 교원은 과외교습을 하면 안 되는데도 불법으로 돈을 받아 챙긴 것이다. 서울대 음대 등과 함께 음악 입시생들이 가장 입학하고 싶어하는 한예종에 A씨는 지난해 합격했다.

이 교수는 A씨에게 불법 레슨만 한 게 아니다. 레슨을 하면서 이 교수는 "내 악기가 1863년 만들어진 이탈리아 명품인데, 입시에 도움이 될 테니 이것으로 연습하라"며 자신의 악기를 선뜻 빌려준 뒤, 입학 후 A씨에게 악기를 1억8000만원에 강매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조사 결과 이 교수의 악기는 '명품'이 아니라 2009년 국내 모 업체가 만든 제품에 '명품 브랜드 라벨'만 붙여 둔 것으로 확인됐다. 합격 발표 직후 A씨 부모가 사례비로 현금 1000만원을 건네자, 이 교수는 "입학에 도움을 준 다른 교수에게도 사례해야 한다"면서 7000만원을 더 요구했다. 결국 A씨의 부모는 악기값과 사례비로 2억6000만원을 줬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002년부터 음대 입시생을 상대로 불법 레슨을 하고 뇌물을 받은 혐의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모(45) 교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뇌물(불법 레슨 사례비 등)을 건넨 학부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0일 밝혔다. 이 교수는 2006년부터 레슨 사례비로 4000만원을 받고, 악기비와 입학사례비로 각각 1억8000만원과 8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지난 11년간 한예종에 입학한 콘트라베이스 전공 학생 44명 중 19명이 입학 전 이 교수에게 불법 레슨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교수는 2002년부터 실기시험 평가에 참석해 자신에게 과외를 받은 학생에게는 최고점을 준 것도 밝혀졌다.

이 교수는 또 학생들에게 자신이 소개한 악기사에서 악기를 구입하게 한 뒤 10%를 커미션으로 받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심지어 "지금 네가 사용하는 악기는 너와 잘 맞지 않으니 내 악기와 바꾸자"며 학생들이 가진 고가(高價)의 악기를 사실상 빼앗고, 자신의 악기가 더 비싸다며 1000만원을 별도로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경찰 조사에서 "입학 전에 학생들에게 레슨을 해주고 돈을 받은 것은 인정하지만, A씨 학부모로부터 받은 돈은 악기 구입 비용으로 절대 부정 입학 사례비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04년 한예종 자체 감사에서 불법 레슨 사실이 적발돼 3개월 정직과 1년간 입시 평가 교수에서 제외되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경찰은 "이 교수가 부모들에게 '입시에 도움을 준 다른 교수에게도 사례해야 한다'고 말한 만큼, 또 다른 교수들의 개입이 없었는지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한예종 관계자는 "지난 1월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이 교수를 직위해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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