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공연 기획자, 전통 예술을 한류(韓流)로 이끈다

입력 : 2012.04.10 14:09

한국형 클럽 파티 '모던. 한(Modern. 韓)' 기획한 조인선 아트 디렉터
"젊은 예술가가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어"
"외국에서 인정받는 한국 전통문화, 국내서 되려 홀대"

화려한 조명 아래 외국인들이 북적대는 모습은 여느 클럽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술은 막걸리로 만든 칵테일에 유명 DJ가 믹싱한 음악은 한국 전통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게다가 무대에선 퓨전 한복을 입은 연주자들이 화려한 공연을 펼친다. 14일 종로에 대형 라운지 클럽에서 펼쳐질 한국형 클럽 파티 '모던. 한'(Modern. 韓)의 모습이다.

이 파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파격적인 대중성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에서 정치만큼이나 요지부동인 분야가 전통 예술계다. 그중에서도 악기나 춤을 기반으로 하는 공연 분야는 엄격한 도제(徒弟) 제도 덕분에 더욱 폐쇄적이다. 단지 전통이란 이유로 트렌드를 애써 외면해온 탓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버렸다. 명절 때나 되어서야 TV나 라디오를 통해 가끔 접할 수 있을 뿐이다.

전통 공연 분야의 특이성은 또 있다. 미술만 해도 전시 기획자의 70% 이상이 실제 그림을 그려본 경험이 있거나 현업에 종사하고 있다. 기획자가 현장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작가을 이해하고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전시를 기획, 운영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전통 예술 분야에 공연 기획자는 주로 외부에서 영입한 마케터나 기획자다. 전통 예술을 잘 알지 못하니 연주자나 댄서들과 호흡을 맞추기 어려워 좋은 공연이 나오기 어렵다.

대작 뮤지컬이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몇 십 년 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공연만으로 눈높이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관객들의 입맛을 만족하게 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한류(韓流)를 이끌며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는 대중 음악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모던.한'(Modern. 韓)을 주목할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전통 공연과 클럽 파티를 결합한 이번 파티에는 한국이 아니면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전통 악기 연주에서부터 한복 패션쇼는 물론이고, 여간 해선 보기 어려운 굿판까지 벌어진다고 하니 귀가 솔깃해진다. 각 대학교 어학당을 통해 주로 한국을 찾은 유학생이나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홍보한 결과 높은 관심과 호응으로 200장의 티켓이 순식간에 동이나 버렸다.

조인선은 201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전통예술원 연합 콘서트 'Quartet Art 가 되다.'에서 디렉팅과 연주를 직접 맡았다.
조인선은 201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전통예술원 연합 콘서트 'Quartet Art 가 되다.'에서 디렉팅과 연주를 직접 맡았다.

이번 파티를 기획한 아트 디렉터인 조인선씨는 전통 공연계에서도 독특한 존재다. 훤칠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의 소유자로 패션 감각도 뛰어나서 외모만 보면 한국의 전통 악기인 아쟁 전공자라는 단서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이번 파티에 전부를 걸었다 해도 좋을 만큼 열정을 쏟고 있다. 덕분에 어디서도 펼쳐진 적 없는 파격적인 내용과 구성으로 가득하다. 전통 공연과 서양식 파티문화를 접목한 점만으로도 놀랍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포부가 예사롭지 않다.

-색다른 기획의 파티다. 기획 의도를 설명해 달라.

“관객 참여가 가능한 공연을 하고 싶었다. 보통, 객석과 멀리 떨어진 무대는 관객과 단절되어 있다. 그래서 국악이라고 하면 가만히 앉아서 감상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에는 찾아가는 공연도 많이 시도하고 있다. 또 의상, 술, 음악, 춤 등 소재도 다양하다. 한국의 전통 예술의 전통적인 이미지는 고전적인 내용에 정적이고 하얀색 일색이다. 이번에는 전통 예술의 다양한 면과 함께 기존의 편견을 깨는 ‘섹시한’ 면을 함께 보여주려 한다.”

-어디에서 이번 파티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나.

“작년에 ‘티(Tea)파티’를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전통 공연이 펼쳐진 1부에서는 전통차, 창작곡이 공연되는 2부에선 유자 에이드를 제공했다. 시각, 청각, 미각 등 오감이 조화를 이루는 색다른 경험이 관객들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모습에서 성공할 수 있으리란 확신을 얻었다.”

-기존 공연과 어떻게 다르단 말인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예를 들면 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굿’을 할 예정이다. 보통 ‘굿’을 생각하면 귀신을 쫓는 무속신앙쯤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과거에는 온 마을이 함께하는 잔치였다. 일종의 종합예술로서 ‘축제의 한 마당’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복원해 보려고 한다.”

조인선은 아트 디렉터이면서 여전히 직접 공연을 하고 있다.

- 아쟁 전공자가 어쩌다 전통 공연 기획자가 되었나.

“예고 때부터 10년 넘게 악기만 연주했다. 그러다 이 좋은 음악을 어떻게 하면 좀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고, 예술 경영을 복수전공하면서 본격적으로 공연기획을 하게 됐다. 특히 전주범 교수(前 대우전자 대표)님의 도움이 컸다. 멘토로서 마케팅과 리더쉽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전통 공연을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운데 왜 그런가.

“전통 예술계에서 신인 예술가는 스스로 홍보부터 마케팅까지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클래식이나 대중음악계처럼 전문적인 프로듀서나 기획자를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니 생기는 일이다. 사정이 이러니 수준 높은 공연을 준비하기 어렵고 공연할 기회도 적다. 결국 관객들이 공연을 보지 않게 되고 투자가 이어지지 않아 설 무대가 없으니 예술가가 떠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해결방법은 없나.

“전문 프로듀서나 기획자를 양성할 수 잇는 교육 시스템이 절실하다. 높아진 관객의 수준을 따라가려면 전문 디렉터가 있어야 한다. 또, 협업도 필수다. 다른 분야처럼 음악과 영상, 시간과 공간이 합쳐져야만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

-공연 후에 계획이 있다면.

“파티를 성공시킨 후에, 파티를 포함한 이번 공연을 가을에 있을 아트 마켓(Art Market)에 내놓으려 한다.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작품은 모두 이곳을 통해 먼저 소개됐다.”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싶다는 말인가.

“물론이다. 파티와 접목한 공연이라는 포멧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켜서 많은 예술가가 공연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다. 파티란 콘텐츠가 계속 바뀔 수 있는 장소이고 관광객을 포함해 문화 소비의 주체인 20~30대가 주 타겟이 될 수 있으니 성공하리란 자신이 있다.”

-아트 디렉터로서 개인적인 꿈이 있다면.

“전통 예술 전문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싶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국 전통 예술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높게 평가 받고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에이전시가 없어 국내 예술가의 해외 진출이 쉽지 않다. 재능 있는 예술가를 위한 징검다리가 되고 싶다.”

안병수PD absdizz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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