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받지 돈 되지… 베를린필 내한 주기 빨라졌다

입력 : 2012.02.12 23:28

명문 교향악단 한국 자주 찾는 속사정
열정적 관객 매너에 반해? - 래틀 "당장 내년에 또 오자" 공연 뒤 매니저에 즉석 제안
유럽 불황에 아시아로 턴 - 美·유럽·아시아 3각축 깨지고 한·중·일 3국, 황금 시장으로

"당장 내년에 한국 공연을 다시 잡았으면 좋겠다."

지난해 11월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 뒤,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57)은 홍조(紅潮)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매니저에게 이렇게 말했다. 베를린 필과 래틀은 3년 만에 내한해 말러의 교향곡 9번을 연주한 참이었다. 래틀은 한국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즉석에서 이런 제안을 한 것. 당초 베를린 필은 2018년까지 내한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래틀의 제안 덕에 내년 11월 아시아 투어 일정에 한국을 다시 포함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해외 명문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베를린 필의 경우 지휘자 카라얀 재직 시절인 1984년 처음 내한한 뒤, 21년 만인 2005년에야 두 번째 공연을 가졌다. 하지만 2008년과 2011년 등 최근 3년 간격으로 내한 간격이 줄어든 데 이어서, 최근에는 2013년 11월로 2년까지 주기가 줄었다. 최근 한국 공연 주최 측은 내년 하반기 베를린 필 내한 공연을 위해 예술의전당에 대관 신청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베를린 필과 더불어 세계 정상을 다투는 명문 악단인 빈 필하모닉도 2006년과 2009년 등에 내한했으며, 네덜란드의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도 2010년에 이어 다시 이달 한국을 찾는다. 해외 명문 악단의 내한 공연이 더 이상 특별하고 이례적인 호사(豪奢)가 아니라, 점점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간다는 뜻이다.

지난해 11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한 지휘자 사이먼 래틀(위). 2006년 빈 필하모닉을 이끌고 내한했던 발레리 게르기예프(가운데)와 2010년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내한공연을 지휘했던 마리스 얀손스(아래).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빈체로 제공
지난해 11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한 지휘자 사이먼 래틀(위). 2006년 빈 필하모닉을 이끌고 내한했던 발레리 게르기예프(가운데)와 2010년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내한공연을 지휘했던 마리스 얀손스(아래).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빈체로 제공
이들 악단이 잦은 내한공연에 대해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한국 관객의 열정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무대 뒤의 속사정은 조금 복잡하다. 21세기 들어 음반 시장의 불황이 장기화하자 당장 살림살이가 빠듯해진 악단들이 해외 투어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120여 년 역사의 영국 명문 음반사인 EMI가 최근 유니버설뮤직과 소니 등에 분할 매각될 만큼 음반 시장의 불황은 골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과 유럽 경제 위기 등 서양 클래식 음악계의 '전통적 내수 시장'이 부진에 빠진 가운데, 한·중·일 아시아 3국이 상대적으로 황금 시장으로 떠오른 것도 한 원인이다. 지휘자와 단원, 행정 스태프 등 최대 200여 명까지 한꺼번에 이동하는 해외 명문 악단의 투어 공연은 그동안 미국과 유럽, 아시아라는 삼각 축을 중심으로 진행됐지만, 최근에는 아시아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커진 것이다. 이 때문에 해외 명문 악단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 보내는 '러브콜'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최고 45만원에 이르는 고가(高價) 티켓이나 잦은 공연으로 인한 과잉 공급과 과당 경쟁 같은 문제가 걸림돌로 남아있어, 실제 청중 확대에 도움을 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음악 칼럼니스트 유정우씨는 "지금까지는 해외 악단의 내한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면, 앞으로는 다양한 관객 서비스를 함께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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