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뮤지컬 '닥터 지바고'… 기대 못 미치는 무대, 조승우가 구해낼까

입력 : 2012.02.02 03:04   |   수정 : 2012.02.02 06:17

원작 줄거리 따라가기 급급, 감정전달 없는 지바고의 사랑
전투장면·무대도 실망스러워… 믿을건 흥행제조기 조승우뿐

뮤지컬 '닥터 지바고'에 합류하게 된 배우 조승우는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이제까지 내 작품 중에서 흥행에 실패한 게 없다"고 말했다. '지바고'는 지난달 27일 상승 일로의 조승우에게 또 하나의 날개를 달아줄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며 막이 올랐다.

'지바고'는 포스터에서부터 '소설과 영화의 위대한 감동!'을 내세운다. 느낌표까지 찍었다. 널리 알려진 대작의 향기를 뮤지컬적으로 풀어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원작의 강렬함은 오히려 족쇄가 되고 말았다. 작품은 2시간30분 내내 원작의 기본 줄거리를 허겁지겁 따라가기에 바쁘다. 배우들조차 주어진 대사와 노래를 완수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느라 힘이 부친다. 원작을 아는 관객은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모르는 관객에게는 불친절하다. 산만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관객이 인물 각각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지바고는 그저 두 여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뿐, 둘 중 누구에게도 인생을 걸었다는 감정을 전달하지 못한다.

지난 27일 개막한 뮤지컬‘닥터 지바고’중 군인들이 열을 맞춰 행진하고 있다. /오디뮤지컬컴퍼니 제공
지난 27일 개막한 뮤지컬‘닥터 지바고’중 군인들이 열을 맞춰 행진하고 있다. /오디뮤지컬컴퍼니 제공

왜 사랑하는지를 보여주기 힘들면, 얼마나 사랑하는지라도 느끼게 해줘야 한다. 그것마저 없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관객은 팬텀이 왜 크리스틴에게 그토록 목을 매는지는 알 수 없으나, 팬텀이 그녀를 얼마나 원하고 그리워하는지를 느끼면서 가슴이 미어진다.

장면 구현에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라라가 다림질하다 옷을 태우는 장면 등은 영화(1965)의 미장셴을 그대로 따왔는데, 정작 가장 필요한 부분은 안 베꼈다. 영화에서 멀어져가는 라라의 뒷모습을 한순간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닫힌 창문을 깨던 지바고의 진심은 무대에서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미친 가창력'을 자신의 고유 수식어로 갖고 있는 주역 홍광호의 노래 실력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그의 가창력을 과시할 확실한 노래가 없다. 라라 역의 김지우는 고음 근처에 가면 성량이 달리고, 더블 캐스팅된 전미도는 안중근을 짝사랑하던 '영웅'의 링링에 머무른 채, 세 남자가 한꺼번에 매달리는 성숙한 여인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결국 노벨상 수상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50여년 전에 창조한, 시대에 아파하고 고뇌하던 시인 지바고는 두 여자 사이의 엉거주춤 불륜남으로만 관객에게 남게 된다.

이야기가 안 되면 무대를 보는 즐거움이라도 줘야 한다. 책걸상과 기둥을 위주로 꾸민 무대를 '심플하고 모던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모던하려면 비어 있되 꽉 찬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 지바고 무대는 그저 비어 있을 뿐이다. 전투복을 입고 일렬횡대로 늘어선 뒤로 연기만 뿜으면 전쟁의 긴박감이 전달될까. '지바고' 제작비의 100분의 1 비용으로 올렸던 연극 '레미제라블'의 전투 장면도 이보다는 나았다. '기복이 심하다'는 평가를 받는 브로드웨이 연출가 데스 맥아너프는 그의 '기복' 중 최저점을 보여준 듯하다.

'지바고'는 관객이 왜 기필코 관람해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데 힘이 달려 보인다. 남녀 간 사랑의 작대기가 복잡하게 얽힌 드라마를 볼 것이면 집에서 편하게 텔레비전을 틀면 되고, 눈보라 휘날리는 압도적인 무대를 원하면 '영웅'을 보면 된다. 이제 남은 건 조승우 카드뿐이다. 현재까지 전문가들의 의견은 둘로 나뉜다. "조승우에게 딱 맞는 작품"이라는 평과, "조승우라도 안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조승우는 할 수 있다'는 전설이 이어질지, '조승우도 못 구하는 작품 나왔다'는 기록이 나올지가 3월 뮤지컬계의 최대 관심사가 될 듯하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