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같은 인간의 내면

입력 : 2011.12.28 23:50

극단 화동연우회 '떼레즈 라깽'

"죽어주면 좋겠어."

늦은 오후, 남몰래 친구의 아내와 밀회를 즐기던 남자는 장애물인 친구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연민뿐인 결혼에 질식한 여자는 남자의 유혹에 기꺼이 몸을 맡긴다. 남자는 보트 사고를 위장해 친구를 수장(水葬)하는 데 성공하지만, 죽은 친구의 악령은 그때부터 둘의 영혼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극단 화동연우회(회장 오영호·61회)의 제21회 정기공연인 '떼레즈 라깽'(연출 이현우·78회)은 욕망과 죄의식의 사슬에 결박된 인간의 절규를 밀도 높게 보여준다. 1991년 경기고 동문들이 만든 화동연우회는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작품성 높은 국내 초연작을 선보여 왔다. 4회 공연 때 올린 '이것들이 레닌을?'(토마스 톨마소프 작)은 세계 초연이었다. 1회 때는 남자만 나오는 작품('이런 동창들'·제이슨 밀러 작)을 골랐다. 한번 해보니 "역시 무대에는 분 냄새가 있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 2회('열 개의 인디언 인형'·애거사 크리스티) 때부터 기성 여배우를 섭외해서 함께 공연해 왔다. 처음으로 협업한 여배우는 '파리애마'(1988)에 나왔던 유혜리와 성병숙이었다.

남편을 사고사로 위장해 죽음으로 몰아넣은 여인 떼레즈 라깽(오른쪽)이 반신불수가 된 시어머니 라깽 부인을 붙잡고 죄를 고백하며 눈물짓고 있다. /화동연우회 제공
남편을 사고사로 위장해 죽음으로 몰아넣은 여인 떼레즈 라깽(오른쪽)이 반신불수가 된 시어머니 라깽 부인을 붙잡고 죄를 고백하며 눈물짓고 있다. /화동연우회 제공
지난해 20주년 기념작 '페리클레스'에 이어 이번에 올린 '떼레즈 라깽'은 프랑스 자연주의 작가 에밀 졸라의 1867년 작품. 제목인 떼레즈 라깽은 남편을 살해한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박찬욱 감독이 일독(一讀) 후 "마치 내가 쓴 것 같다"며 감탄해 영화 '박쥐'로 만들었다.

작품은 단순한 치정극을 넘어,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파국을 냉정하게 따라간다. 남편을 죽인 여자는 "당신 덕분에 공포 속에 살고 있어!"라고 정부(情夫)에게 소리치고, 친구를 죽인 남자는 "그 녀석한테서 도망칠 수가 없어!"라며 부르짖는다. "우리 생각은 그 사람 거예요!"라던 두 사람은 결국 동반자살의 길을 택한다.

남녀 주연인 유태웅(87회)과 박묘경의 몸부림치는 열연이 뛰어나다. 반신불수가 된 라깽 부인의 묘사가 영화 '박쥐'와 지나치게 흡사해 극의 개성을 떨어뜨리는 점은 아쉽다.

▲30일까지 대학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02)3673-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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