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에비타

입력 : 2011.12.11 23:16

[같은 역할로 맞붙은 뮤지컬 두 디바, 리사·정선아]
리사 - "무엇을 해도 끝없이 갈망… 에비타와 저의 공통점이죠"
정선아 - "이 작품 제대로 하고 나면 하산해도 될 것 같아요"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5층에는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은밀한 방이 숨어 있다. 지난 9일, 복도를 따라 붙어있는 방마다 새로운 이름표가 하나씩 붙었다. 가장 안쪽 방 앞의 이름표는 'Eva Peron(에바 페론)'. 이날 개막한 뮤지컬 '에비타'의 주인공을 맡은 리사와 정선아가 번갈아 쓰는 분장실이다. 이곳에서 두 사람을 9일과 10일 각자의 첫 공연 직후 만났다. 최정원과 박해미, 홍지민 등이 뮤지컬 디바의 시대를 열었다면, 리사와 정선아는 그 뒤를 이어갈 대표적인 차세대 디바다.

9일 오후 11시 개막 공연을 끝낸 리사는 검정 가운을 걸치고 분장실 거울 앞에 앉았다.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이지나 연출가였다. "오늘 저음이 잘 안 들리더라. 무슨 문제가 있었니?" 뮤지컬 '광화문연가'에서 만나 연인 사이가 된 배우 송창의는 "어머니도 보셨다"면서 눈짓으로 격려를 보냈다.

9일 개막한 뮤지컬‘에비타’의 주연 리사(왼쪽)와 정선아가 역삼동 LG아트센터의 조명 아래 섰다. 두 사람은 가창력과 연기력을 고루 인정받는 대표적인 뮤지컬 디바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9일 개막한 뮤지컬‘에비타’의 주연 리사(왼쪽)와 정선아가 역삼동 LG아트센터의 조명 아래 섰다. 두 사람은 가창력과 연기력을 고루 인정받는 대표적인 뮤지컬 디바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리사는 이날 공연에서 권력 의지에 불타다 병마에 사그러드는 에바(애칭 에비타)의 절정과 최후를 온몸으로 보여줬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리사는 최근 청담동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가수로 활동하며 음반도 여러 장 냈다. "무엇을 해도 끊임없이 원하는 게 앞에서 기다리는 것이 에비타와 저의 공통점"이라 했다. 그녀는 갈망의 순간을 표현할 때 가장 빛났다. 정적(政適)의 공격에 흔들리는 페론을 붙잡고 "높은 정치인 스무 명을 생각하지 말고, 당신을 사랑하는 수천만 명을 생각하라!"고 할 때, 암에 걸려 "내 병을 이용해!"라고 부르짖을 때, 여린 몸이 부서질 듯한 절규가 화려한 고음에 실려 터져 나온다.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죽고 나서 침대에 누워 있었을 때"라고 말했다. "눈물이 나서요. 에비타가 못다 이룬 것을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어요." 연인 송창의가 "감정을 먼저 풀어내고 그 위에 노래를 얹으라"며 에비타 해석에 도움을 많이 줬다고 한다.

정선아는 10일 오후 3시 첫 공연 때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에서 정강이를 다쳤다. 뼈는 이상이 없었으나 멍이 꽤 들었다. 다리에 얼음 주머니를 대고 분장실에 앉은 그는 "이 정도 부상쯤은 무대에 올라가면 잊어버릴 수 있다"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평소 "쿨하다"는 평 그대로였다. 2002년 뮤지컬 '렌트'로 데뷔한 그는 뮤지컬 경력 10년차. "에비타 노래는 음역대가 굉장히 높아서 어렵다"며 "이 작품을 제대로 하고 나면 하산해도 될 것 같다"며 웃었다. 열렬한 힘이 뿜어져 나오는 그의 노래는 열다섯 소녀 에바가 서른셋 성녀 에비타로 변신하는 순수와 농염의 변화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1막 마지막 장면에서 '새로운 아르헨티나'를 부를 때 저도 모르게 뜨거운 게 울컥 올라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얼마나 멋있는 일이겠어요. 에비타를 하면서 여성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여성 관객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인터뷰가 끝난 후, 1시간가량 물리치료를 받은 정선아는 오후 8시 예정대로 무대에 올랐다. 관람객 중의 한 명이었던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를 비롯한 관객 모두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원래 걸림돌이 생기면 더 열심히 한다"는 게 연출가 이지나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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