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12.09 10:45
올해 국내 뮤지컬 시장의 규모는 약 2500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2000억원 규모에서 2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런 가운데 오디뮤지컬컴퍼니의 '지킬 앤 하이드'가 조승우를 앞세워 지난 9월말 관객 동원 35만 명, 총매출 275억원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막을 내렸다. 뮤지컬 산업화를 위해 장기공연은 필수다. 우리 여건에서 거의 최대치라고 할 수 있는 9개월 공연에서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는 것은 의미있는 사건이다.
공연시장의 인프라인 전문 공연장 3곳이 문을 열었거나 열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도 올해의 빅뉴스다. 지난 9월초 서울 신도림에 디큐브씨어터(1242석)가 개관작 '맘마미아'로 첫발을 내딛었고, 11월엔 서울 한남동에 블루스퀘어(1700석)가 '조로'로 문을 열었다. 내년 상반기엔 서울 대학로에 CJ아트센터(1030석)가 역시 오픈한다. 기존의 잠실 샤롯데씨어터와 더불어 뮤지컬 전문 공연장이 4곳으로 늘어난다. 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뚫린 것 만큼이나 역사적인 사건이다.
뮤지컬 인프라가 상당부분 구축되었음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이들 극장이 서울 곳곳에 분산돼 있어서다. 만약 서울의 대학로 같은 곳에 극장 4개가 몰려 있다면, 뉴욕의 브로드웨이나 런던의 웨스트엔드처럼 공연 클러스터(cluster)를 형성해 국내 뮤지컬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됐을 것이다.
올해 뮤지컬 산업화와 관련해 의미있는 사건은 또 있다. 가요기획사 등 연예 자본의 뮤지컬계 진출이 본격화했다는 점이다. 티아라가 소속된 코어콘텐츠미디어가 '오페라의 유령'을 제작한 설앤컴퍼니와 함께 창작뮤지컬 '천국의 눈물'을 지난 2월 국립극장에서 초연했고, 이수만 프로듀서의 SM엔터테인먼트는 10월 초 전속 공연 프로듀서와 작가 등을 포함한 공연제작기획팀을 올해 안에 발족해 2012년 하반기 창작뮤지컬을 선보이겠다고 발표했다.
연예 자본의 뮤지컬 진출은 향후 국내 뮤지컬 시장의 지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가까운 미래에 대형 연예 자본이 뮤지컬을 자신들의 비즈니스 구조에 편입시켜 아예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일부에서 뮤지컬이 독자적인 예술성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상업적인 비즈니스로 전락할 지 모른다는 우려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붐이 일기 시작한 한류 뮤지컬 또한 비슷한 맥락에 있다. CJ엔터테인먼트와 쇼노트가 제작한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는 한류 그룹 카라의 규리를 앞세워 10월 일본 투어에 이어 국내공연을 시작했다. PMC프러덕션은 90년대 이후 히트곡으로 엮은 창작뮤지컬 '늑대의 유혹'을 지난 7월 초연했다. PMC는 'K-팝 뮤지컬'이라는 슬로건 아래 '늑대의 유혹'을 갖고 2012년 아시아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외형상 화려하고 굵직굵직한 사건이 많았던 반면 콘텐츠의 내실은 외형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지킬 앤 하이드' '캣츠' '맘마미아' '아가씨와 건달들' '삼총사' 등 라이선스 화제작들은 많았지만 신작보다는 리바이벌 작품이 대부분이었고, 창작 뮤지컬들은 여전히 시장을 주도하지 못했다.
창작뮤지컬의 경우 올해는 형식 면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광화문 연가'는 고(故)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었고, 서울시뮤지컬단의 '투란도'와 대구뮤지컬페스티벌에서 선보인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오페라를 우리 창작 인력이 뮤지컬로 재탄생시켜 눈길을 모았다. 소극장 뮤지컬에서는 영국의 코난 도일이 창조한 명탐정을 모티브로 삼은 '셜록 홈즈'(제작 레히)가 다양한 아이디어와 흥미 있는 구성으로, 허먼 멜빌의 고전을 무대화한 '모비딕'은 다양한 악기를 캐릭터화한 독특한 형식으로 각각 눈길을 모았다.
'투란도'부터 '셜록 홈즈' '모비딕' 등은 공교롭게도 서양의 원작들을 우리 손으로 재가공했다. 소재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그만큼 국내 창작인력의 층이 엷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국내 뮤지컬계는 지난 90년대 이후 충무로를 모델 삼아 뛰어왔다. 할리우드 영화에 오랫동안 주도권을 내줬던 한국영화는 지난 90년대 말을 기점으로 급성장해 국내 시장을 이끌며 해외 진출을 모색해온 지 오래다. 창작뮤지컬도 놀라운 성장을 해왔으나 아직 라이선스 작품에 비해 경쟁력과 완성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유능한 작가와 작곡가, 안무가 등 창작인력들이 여전히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문제는 1차 창작력과 상상력이다.
뮤지컬 전용관은 늘어나고, 뮤지컬 시장의 비즈니스 모델은 국제화하고, 세분화되고 있는 반면 그 안에 담을 창작 콘텐츠의 수준은 아직 뒤떨어져 있는 게 현실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향후 발전의 열쇠이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