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줄로만 보면 연극계 아이돌, 손숙

입력 : 2011.11.30 03:15

'셜리 발렌타인' 1인 17역, 내년엔 작품 3개나 올려 "셜리의 벽 뛰어넘기는 삶에 갇힌 모두의 이야기"

4일까지 연극 ‘셜리 발렌타인’으로 다시 관객을 만나는 배우 손숙. 개까지 포함해 1인17역을 해낸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48세 주부 셜리는 하이힐만 신어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친구 제인이 생전 처음 그리스에 가보자고 했지만, 엄두가 안 났다. "겁이 나. 저 벽 너머에는 내 삶이 없을 것 같아."

주방의 벽과 대화하며 하루를 보내고, 남편만 바라보며 살던 셜리는 스테이크가 아니라 계란과 감자칩을 내놓았다가 남편에게 불호령을 듣는다. 그가 던진 계란이 깨져 다리 사이로 줄줄 흐르던 날, 셜리는 선언한다. "벽 너머의 땅으로 갈 거야! 그리스 해변에서 올리브를 먹을 거야! 뭐든지 다 해볼 거야!"

지난 20일 연극 '셜리 발렌타인'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배우 손숙(67)에게는 '벽 너머로 나선' 셜리의 강단이 엿보였다. 1994년 초연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영복 맵시도 여전했다.

극 중에서 손숙은 개를 포함해 17역(役)을 혼자서 한다. "제가 좀 자만했던 것 같아요. 여러 번 해봤던 작품이고요. 그런데 공연 열흘 전에 연출자 글렌 월포드가 도착하고서야 대강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글렌의 주문은 단호하면서도 혹독했다. "바위한테도 개성을 부여하라." 17개 역할을 하나하나 새로 따져보면서 만들어나가야 했다. 가장 힘들었던 인물은 지중해의 근육질 남성 코스타스였다. 그리스에 도착한 셜리가 마음을 준 남성인데, 아무래도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마침 경제 위기로 뉴스 화면에 그리스가 자주 비쳤어요. 코스타스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다행히 조금 잡히는 것 같았어요. 호호."

영국에서 1986년 초연된 '셜리'의 외침이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울림을 줄 수 있을까. 손숙은 "여성의 일탈에 한정된 게 아니라, 삶에 갇혀 있는 모두의 이야기"라며 "그런 의미에서 부부들이 함께 공연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은퇴 후 남자들의 삶도 어떻게 보면 벽 너머의 삶이잖아요. 매일 출근하던 남자가 24시간 파자마 바람으로 집에 있으면 아내는 숨 막혀 죽으려고 하겠고요. 남성에게는 벽 너머의 새로운 삶에 도전할 용기가 필요해요. 그런 면에서 이번 공연이 남성 관객에게도 호소력이 있을 거라고 봐요. 저 역시 이번에 셜리를 연기하면서 그녀가 더 귀엽게 느껴지고 좋아졌습니다."

내년에 작품 3개를 올리는 손숙은 ‘스케줄로만 보면 연극계 아이돌’이다. 4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셜리 발렌타인’에서는 개까지 포함해 1인 17역을 해낸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내년에 작품 3개를 올리는 손숙은 ‘스케줄로만 보면 연극계 아이돌’이다. 4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셜리 발렌타인’에서는 개까지 포함해 1인 17역을 해낸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손숙은 내년에 작품을 3개나 올린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가 "스케줄로만 보면 연극계의 아이돌"이라고 놀린다고 한다. 주부의 우울증을 다룬 '아내들의 외출', 박완서의 작품을 무대화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가족의 안락사를 다룬 '엄마엄마엄마' 등 묵직하고 의미심장한 작품들이다. "욕심이 나니 어떡하겠어?"

셜리가 그리스로 자신을 찾으러 온 남편과 재결합할지는 관객의 해석에 달렸다. 손숙은 "남편에게 돌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그리스까지 찾아왔다는 것은 셜리를 이해했다는 것 아닐까요? 벽 너머로 함께 손잡고 도전해서 새 삶을 찾을 것 같아요."

▶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02)580-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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