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액션으로 버무린 맛있는 공연, 말이 필요없네

입력 : 2011.11.24 09:15

가족과 함께 즐겨요, 논버벌 뮤지컬

비빔밥을 버무리듯 비언어극의 재미있는 요소를 잘 버무려낸‘비밥’. 비트박스와 비보이의 신나는 소리와 힘찬 춤이 볼거리다. / CJ E&M 제공
비빔밥을 버무리듯 비언어극의 재미있는 요소를 잘 버무려낸‘비밥’. 비트박스와 비보이의 신나는 소리와 힘찬 춤이 볼거리다. / CJ E&M 제공
초밥 한 점 먹고 바다를 꿈꾸게 된 사나이가 두 팔을 벌린다. 입고 있던 옷은 형광색 잠수복으로 빛나고, 발끝에서 형광 붕어가 수줍게 뽀뽀한다. 눈앞에서 펼쳐지던 황홀한 바다가 어느새 주방으로 바뀌면 둥그런 피자 반죽이 객석으로 날아온다. 무대 위 요리사 8명과 푹신한 베개 같은 반죽을 주고받는 관객 사이에서 즐거운 비명이 연달아 터진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화손보 세실극장은 평일인데도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이곳은 15살 큰형님 '난타'와 5살 아우 '점프'가 각축을 벌이는 비언어극(논버벌·nonverbal)시장에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비밥'(총감독 최철기) 공연장. '비밥'(Bibap)은 비빔밥(Bibimbap), 비트박스(Beat box), 비보이 (B-boy)를 줄인 말로, 대사 없이 몸짓만으로도 신나는 비언어극의 제맛을 보여준다.

막이 오르면 요리라면 어딜 가나 최고인 그린쉐프와 레드쉐프가 대결을 시작한다. 섹시쉐프와 리듬쉐프가 은근히 대결을 부채질하고, 천방지축 루키쉐프와 깜찍 발랄 큐티쉐프가 재미를 더한다. 입으로 쿵쿠궁쿵쿵 박자에 맞춰 드럼 소리를 내는 비트박스(MC셰프), 바닥과 천장, 기둥이 한몸인 듯 몸을 부비고 도는 비보이(아이언셰프)의 춤이 중간중간 쉴 새 없이 등장한다. 참치 한 마리를 순식간에 한 접시 회로 만들고(진짜 참치는 아니다), 꼬꼬댁 요란하게 도망가는 닭(역시 진짜는 아니다)을 잡아 국수를 만든다.

90분 공연 내내 눈이 즐겁고 몸이 들썩이며 콧소리가 절로 나온다. 기존 비언어극 요소를 절묘하게 뽑아내 비빔밥 비비듯 버무렸다. 4살 꼬마와 40살 부모가 모두 즐거운 가족 공연물로 손색이 없다. 대결 음식이 새롭게 준비될 때마다 관객을 무대로 불러 맛을 보게 하거나 요리사를 고르게 하고 선물도 준다.

요리 대결이 끝날 즈음, 주방 벽면이 갈라지면서 100여개의 스피커가 3면을 둘러싼 새로운 무대로 변신한다. 출연진이 랩과 액션을 동원해 화끈하고 시원한 춤으로 마무리할 무렵이면 공연장 온도가 10도쯤 올라가 있는 것 같다. 2009년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 공연으로 시작해, 3년간 고치고 다듬어 지난 5월 정식 개막했다. 지난해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문의 (02)766-0815

태권도와 태껸 등의 무술이 등장하는‘점프’/ 예감 제공
그 외 볼 만한 비언어극은

요리로 몸의 언어를 보여주는 '비밥'에서부터 무술과 춤·그림·마술까지 비언어극의 영토는 끝을 모른다. 국내 최초로 비언어극 시장을 개척한 난타(명동·정동 난타전용극장, 02-739-8288)는 결혼 파티를 준비하던 요리팀에 사고뭉치 주방장이 합류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사물놀이 리듬에 맞춰 펼쳐보인다. 지난 7월 누적 공연횟수 2만회를 넘어섰다.

점프(종로 점프전용극장, 02-722-3995)는 할아버지·아버지·어머니는 물론 삼촌에 딸까지 유단자인 집에 억세게 운 나쁜 도둑이 들어갔다가 곤욕을 치르면서 벌어지는 코믹 무술극이다. 태권도와 태껸 등 동양 무술이 총출동한다.

끈에 달린 채 사람의 손에 움직이는 마리오네트 인형과 빨간 모자 소녀가 사랑에 빠지는 마리오네트(대한생명 63아트홀, 1661-1063)도 볼 만하다. 소년과 소녀의 안타까운 만남과 서글픈 이별, 애틋한 사랑과 피할 수 없는 갈등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세계적인 비보이 그룹 '익스프레션 크루'가 참가했다.

카르마(구세군 아트홀, 02-336-1289)는 단군 신화 이전 세상에서 태양의 신과 달의 신이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권력과 파괴의 서사시를 장대하게 선보인다. 한국 무용의 고전적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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