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좋다면, 그 길이 답이다. 배우 신성우

입력 : 2011.11.04 09:33

이제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음악인 신성우가 뮤지컬 <삼총사>로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선다. 무대가 되풀이될 때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초연에 이어 두 번째 같은 역할에 도전한다. 그에게서 무대와 스태프, 배우를 향한, 지켜내야 하는 의리가 느껴진다. 하고 싶은 일만 고집하는 신성우의 모습이, 지금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신성우에게서 강하지만 편안한 울림을 보았다. 어색할 것 같은 너털웃음이 신성우의 얼굴에 자연스레 퍼진다. 예전 그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가죽 재킷에 찢어진 청바지를 매치한 반항적 이미지로 록 정신을 세련되게 대변했다. 적어도 잘 보이고 싶은 이성 앞에서 그의 노래 ‘서시’를 부르며 분위기를 잡아봤거나, ‘내일을 향해’를 부르며 신나게 머리를 흔들던 세대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 것이다. 드라마와 뮤지컬로 브라운관과 무대를 오가며 연기가 또 다른 그의 업이 된 요즘, 연기하는 음악인 신성우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음악이 각인된 덕분인지 그에게서 음악을 분리하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그 역시 그의 세금 명세서에 적혀 있는 다수의 직종 중에서 가장 먼저 음악인을 답한다. 작사, 작곡, 편곡, 배우, 영화음악 감독, 조각가 등이 일단 그가 열거한 현업 리스트다.

첫 데뷔 앨범 <내일을 향해>(1992) 발표 이후 20여 년의 시간을 대중과 보낸 신성우. 데뷔하자마자 외모가 풍기는 이미지와 분위기 때문에 붙여진 ‘테리우스’라는 닉네임은 어느 순간 그의 그림자가 되었다. 뒤를 이어 누군가 테리우스의 이름을 빌리기는 했지만, 원조 테리우스의 벽을 확실하게 넘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만든 허상 중 하나예요. 사실 ‘주홍글씨’로 다가온 적도 있어요. 제가 보여주고자 하는 예술적 진지함이 곡해될 수 있는 첫 코드이기도 하죠. 피를 토할 정도로 연습을 하고 노래를 불렀지만, 차가운 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적도 있었어요. 오히려 그런 점이 자극제가 됐어요. 실력을 무기로 주홍글씨에 정면 승부를 했죠.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절대적이었으니까요.” 본의 아니게 스스로를 감싸고 있는 이미지가 누군가에게는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혹자에게는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 연유를 차치하더라도, 그에게 음악은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그의 음악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기쁘다고 한다. 그는 음악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 믿는다. 받은 선물을 자만하지 않고 타인에게 돌려줄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틈이 생기면 바이크를 타고,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 작업을 한다. 달리는 바이크는 생각만으로도 짜릿하고 막연히 좋다. 그는 그 순간을 번지점프에서 떨어지는 중간 지점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라 묘사한다.

신성우는 세월이 흐를수록 나이를 멋있게 맞는다. 그도 살면서 나잇값, 얼굴값, 이름값 등 온갖 ‘값’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에는 이견이 없으나 방식이 보편적이지 않다. 그는 하고 싶은 걸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비로소 온갖 ‘값’들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살아왔던 날들과 살고자 하는 날이 어제와 다르지 않도록 나의 숨 속에 살아 있거라(드라마 <무사 백동수> OST ‘고여’ 중)’라는 가사도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비밀인데 제가 쓰는 가사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대부분이에요.”

조소를 전공한 그에게 음악이 친구였다면, 연기는 여행처럼 다가왔다. 노래로 오롯이 혼자 무대를 책임졌던 그에게 뮤지컬 무대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더 솔직히 뮤지컬에 대한 뚜렷한 정체성이 없었죠. <드라큘라> 대본과 음악을 접하고는,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공연은 함께 호흡을 맞추고 합을 이뤄야만 감동을 줄 수 있잖아요. 그 점에 끌렸어요. 뮤지컬도 결국 음악이잖아요.”

신성우에게 작품 선별 기준은 단연코 ‘음악’이다. 스스로 감정을 느껴야 관객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절대적이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지켜내는 또 다른 하나는 함께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드라큘라>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록 햄릿> <삼총사> <록 오브 에이지> <잭 더 리퍼> 등 창작 혹은 라이선스 중에서도 각색이 가능한 작품만을 선택했다. 이미 정해진 고정된 틀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 작품은 오디션조차 거부한다. 작은 움직임과 감정조차 미리 짜여진 형식에 얽매여야 한다는 것은 그의 소신과 거리가 멀다. “억지로 맞추면 배우의 진의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요. 불편한 배우의 몸짓은 관객을 위해서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스태프, 배우가 존중을 바탕으로 작품을 충분히 논의하고 장면을 만들어야 비로소 관객과 소통 가능한 작품이 완성된다고 믿어요. 그게 제가 뮤지컬에 서는 재미이기도 하고요.”

혼자 사는 남자, 텔레비전으로 말을 배우다
세상에 천재라 일컫는 자들이 있다! 정말 천재라 함은 어떤 무리에서 50보를 앞서가는 자가 아니라 48보를 후퇴할 줄 아는 자다! 뒤에선 무리들이 일컫는 천재나 현명하다라 하는 것은 결국에 50보를 앞서간 자를 겨우 두보 앞선 자로 보는 무지다!

(신성우 트위터) 좀처럼 인터뷰, 방송 활동 등 대중 앞에 사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성우가 트위터에 빠져 있다. 의외다. 솔직한 감정을 거침없이 올리고, 친구들과의 소소한 일상 역시 스스럼없이 맨션으로 남긴다. 데뷔 초 지금의 아이돌처럼 그 역시 헤아릴 수 없는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다. 비슷한 질문과 대답이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정말로 해야 하는 얘기가 있을 때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틀 안에 나를 밀어 넣고 싶지 않아요. 불편함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요? 트위터는 다른 사람의 얘기를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제 방식으로의 통로예요.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에 대해서도 한 방에 잠재울 수 있어 재미있어요(웃음).” ‘나’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인 트위터가 그에겐 작은 놀이터다.  

나랑 지금 술 마실 사람!(신성우 트위터) 술 마시는 자리, 사람을 좋아하는 그의 술친구는 주로 바이크를 함께 타는 친구들, 음악 하는 친구들, 같이 무대에 서는 친구들이다. 술을 오래 마시고 싶을 때는 후배 안재욱을 찾는다. 사계절 모두 외로움이 곁에 있다는 그는 예술가에게 필요악이라 생각되는 외로움을 벗 삼아, 호인들과 기울이는 술잔을 좋아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위로받으려 하지는 않는다. 그에게 외로움은 혼자서 지켜내고, 버텨내야 하는 숙명일 뿐이다. 그저 옆에 있는 친구, 술, 웃음이 좋을 뿐이다.

집에 오면 혼자 사는 남자 신성우에게 텔레비전은 친구가 된다. 우스갯소리로 드라마를 보면서 캐릭터와 대화를 나누던 것이 습관이 되어 요즘은 냉장고를 열고 반찬이 없다며 자신을 향해 허공으로 말을 던지기도 한다. “평소 말이 별로 없는 편인데, 텔레비전을 보면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고, 뒤늦게 말을 배우게 됐어요(웃음)”라며 혼자 사는 남자의 귀여운 너스레를 보여준다.  

우울증을 달고 산다. 나에게 우울증이란 에너지를 얻게 하는 힘일 때가 많다. 위험하게 치부하지 않는다.(신성우 트위터)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우울증과 에너지는 상관관계가 없는 단어의 조합이라 생각했다.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일상에 쫓겨 문득 사람과 상황이 싫어질 때, 그는 은둔을 선택한다. 그만의 공간에서 음악, 조각, 영화 감상 등에 최대한 집중하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가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한없이 무엇인가에 몰입하고 나면, 순간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된다고 한다. 그게 신성우의 스타일이다. 그에게는 우울증조차도 에너지로 변신시키는 묘한 재능이 있다. 
본전 찾으려면, 마음껏 웃으세요!
초겨울의 서늘함이 다가오는 11월, 신성우는 뮤지컬 <삼총사>의 ‘아토스’로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선다. 그는 극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무대는 되풀이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초연에 이어 두 번째 같은 역할을 맡았다. 마음으로 낳은 자식의 발전을 위해 배우와 스태프가 의기투합한 것이다. 그가 맡은 아토스는 총사들의 수장으로, 정의롭고 리더십이 강한 남성적 성향이 짙은 캐릭터다. 반면 사랑하는 여인에게는 누구보다 순정적이고 진실하다. 전체적 극의 흐름으로 봤을 때, 아토스는 극의 무게감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대중적으로 익숙한 콘텐츠, 영웅물의 특성상 극이 자칫 유치하거나 가볍게 비칠 수 있는 점을 감안, 신성우는 이번 무대에서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장면, 무게감을 느껴야 하는 장면 등 드라마 흐름에 맞는 무게중심 조절에 집중할 것이다.

그는 같은 역할로 무대에 서는 유준상 외에도 함께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무대를 꼼꼼히 챙겨본다. <잭 더 리퍼> <삼총사> 등 작품을 통해 만난 안재욱, 유준상, 김법래, 민영기 외에도 많은 배우들과는 선후배 이상의 관계다. 혼자서 충분히 무대를 책임질 수 있는 역량 있는 배우들임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는 무대라면 스케줄을 조절해 참여할 정도로 우정과 의리가 대단하다. “이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 행복해요. 어떤 작품이라도 다 같이 하면 해낼 것 같은 용기가 생겨요. 비결이요? 과다한 연습 후 이어지는 잦은 음주죠(웃음). 술만 마시는 게 아니라,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눠요. 마음이 통하는 관계라는 게 우리를 말하는 것 같아요.”

무대 밑에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를 냉정하게 평가받는 심판대라고 무대를 정의한 신성우가 <삼총사> 공연을 앞두고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웃고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이에요. 배우들은 교수가 아닙니다. 교훈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웃고 진한 감동을 즐기세요. 큰 소리로 웃고, 마음껏 즐기세요. 그게 본전(티켓 값) 찾아가시는 겁니다(웃음).” 

그는 <삼총사>에 이어 내년에는 <모차르트 오페라 록>으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그에게 무대는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무대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시선과 사람을 섬기는 자세는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무대 위에서 무대를 더욱 빛나게 하는 배우 신성우를 지탱하는 원천이다. 지독하게 하고 싶은 일과 소신을 고수하는 신성우, 그런 고집스러움 속에 녹아 있는 편안함이 인간적이다. 음악으로 숨을 쉬는 그에게 무대라는 집과 또 다른 가족이 그의 곁에 머물 때, 그 너털웃음은 편안하게 그를 지켜줄 것이다.

information
뮤지컬 <삼총사>
일시  11월 3일~12월 18일 평일 20시 / 수・금토 16시, 20시 / 일 15시, 19시(월 쉼)
장소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문의  02-764-7857

/성남아트센터 월간 '아트뷰' /글. 고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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