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활이 차가워졌다

입력 : 2011.10.19 23:28

내달 내한공연 갖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
상트페테르부르크필하모닉과 협연… 북유럽 서정 담긴 시벨리우스 곡 들려줘
"예전의 난 열정의 아이콘… 서른 넘으니 담백해져요"

'세계에서 가장 바쁜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사라 장(31)이 다음 달 8~9일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내한해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다. 그 자신, 재능 있는 바이올린 연주자이기도 했던 시벨리우스는 악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북유럽의 서정이 담긴 선율과 관현악의 풍성한 울림이 특징인 곡을 만들었다. 사라 장은 여덟 살 때 이미 첫 연주를 했고, 10년 뒤인 1998년 EMI를 통해 음반도 낸 적 있다. "어떤 곡은 너무 많이 켜면 1~2년 쉬었다 다시 하는데 이 곡은 촘촘히 쌓인 층 위에서 물씬 풍기는 시리도록 차가운 느낌이 참 좋아 24년간 연주하지 않은 해가 없다"고 했다.

사라 장. /마스트미디어 제공
사라 장. /마스트미디어 제공
19일 오전 미국 필라델피아 집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사라 장은 짐을 싸느라 분주했다. "보스턴·디트로이트·시카고에서 리사이틀을 열고 막 돌아왔는데 내일 또 프라하로 떠나요. 불가리아·영국·홍콩·한국·대만·아르헨티나를 돌고 내년 1월이나 돼야 집에 돌아오죠." 그녀는 "석달치 악보와 드레스를 한꺼번에 우겨 넣다 보니 여행용 트렁크만 4개"라며 "지금이 연주 인생 중 제일 바쁜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샘솟는 레퍼토리

사라 장은 세계적 오케스트라, 거장 지휘자들과 쉴 새 없이 호흡을 맞춰온 만큼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보유했다. 줄리아드 예비학교에서 수학할 무렵, 스승 도로시 딜레이는 열 살 사라에게 매주 다른 작곡가의 협주곡을 통째로 외워 연습해 오라고 시켰다. "차이콥스키를 하고 나면 바르토크, 그 다음 주엔 쇼스타코비치 이런 식으로 딱딱 지시를 내렸어요. 다 못 외우면 집으로 돌려보냈죠."

현란한 손놀림과 신들린 듯한 기교로 무대를 휘어잡는 사라 장. 그러나 백스테이지에서는“원하는 드레스와 구두를 갖춰 착용하면 연주가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영락없는 아가씨다.
현란한 손놀림과 신들린 듯한 기교로 무대를 휘어잡는 사라 장. 그러나 백스테이지에서는“원하는 드레스와 구두를 갖춰 착용하면 연주가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영락없는 아가씨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필 내한공연을 지휘하는 유리 테미르카노프(Temirkanov·73)와는 6년 전 서울에서 함께 가슴을 쓸어내린 경험을 공유한 사이다. 2005년 10월 런던 필 내한공연 때 신장이 안 좋았던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가 첫날 연주 직후 갑자기 쓰러졌던 것. 응급조치를 마쳤지만 이튿날 공연이 문제였다. 수소문 끝에 당시 일본에 머물던 테미르카노프가 급히 날아와 연주를 마쳤다. 협연자였던 사라 장은 "리허설도 없이 무대에 올랐는데 그분이 타고난 젠틀맨(신사)이라 부드러운 미소와 유머러스한 손놀림으로 긴장을 싹 없애줬다"고 회상했다.

◇사라는 선생님

사라 장은 2006년 뉴스위크 선정 세계 20대 여성 리더 중 하나. 2008년 3월에는 세계 경제 포럼에서 세계의 젊은 리더 중 한 명으로 지목됐다. 정작 그녀는 "세상의 이목에 관심 없다"고 했다. "저는 바이올린만 해도 충분히 행복해요. 레퍼토리가 무궁무진해 싫증 날 겨를이 없거든요." 단 하나, 그녀가 눈 돌리는 것은 전 세계 아이들과의 만남이다. 벌써 15년째 연주하는 도시의 학교를 찾아가거나 연주회에 아이들을 초청한다. 한국에서는 1999년 부산 소년의집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2007년 서울 노량진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사라 장은 "20대 때의 제가 새빨간 롤러코스터였다면 서른이 넘은 지금은 무지갯빛 호수가 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이렇게 말했다. "예전의 사라가 열정의 아이콘이었다면 이번 연주회에서는 쿨하고 한결 담백해진 사라를 볼 수 있으실 겁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1월 8~9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541-3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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