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서울대생들과 음맞춤 "아마추어면 어떤가… 음악가는 모두가 하나의 우주"

입력 : 2011.09.28 23:26

[세계적 지휘자 아슈케나지, 11월 서울대 심포니와 마스터클래스]
"전무후무한 일" 서울대도 놀라… 난 그냥 미스터 아슈케나지
마에스트로 호칭은 닭살 돋아… 젊은 영재 만난다니 설렙니다

지난 7월 중순 서울대 음대학장 김영욱(64·기악과) 교수는 시드니 심포니의 대외협력 업무 담당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오는 11월 내한하는 시드니 심포니의 수석 단원들이 서울대 음대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마스터클래스를 해주고 싶어합니다." 김 교수가 말했다. "우리는 베를린 필 같은 명문 악단들로부터 그런 제안을 숱하게 받습니다." 이에 담당자가 웃으며 말했다. "2009년부터 우리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 중인 아슈케나지씨가 동행해 직접 지휘할 겁니다." 김 교수의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아슈케나지 같은 거장이 직접 오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출신 명(名)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Ashkena zy·74)가 오는 10~11월 서울에서 특별한 며칠을 보낸다.

오는 11월 서울대 예술관 콘서트홀에서 학생 오케스트라를 조련할 때 70대 거장(巨匠)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지휘봉을 든 아슈케나지가 진지한 얼굴로 곡의 악상을 끌어내고 있다. /빈체로 제공
오는 11월 서울대 예술관 콘서트홀에서 학생 오케스트라를 조련할 때 70대 거장(巨匠)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지휘봉을 든 아슈케나지가 진지한 얼굴로 곡의 악상을 끌어내고 있다. /빈체로 제공

아슈케나지는 10월 12일 아들 보브카와 함께 피아노 듀오 리사이틀을 열고, 11월 15일에는 서울대 음대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다음날인 16일에는 시드니 심포니와 함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미샤 마이스키 협연)과 브람스 교향곡 1번을, 17일에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예브게니 키신 협연)과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연주한다. 시드니 심포니는 창단 76년 만의 첫 내한이다.

아슈케나지의 '서울대 입맞춤'은 입국 날짜와 연주회 사이의 '틈'을 어떻게 의미있게 메울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던 아슈케나지측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주한 호주대사관에 "한국의 음악 영재와 만나고 싶다. 최고 학교가 어디냐" 물었고 대사관이 서울대를 추천한 것. 아슈케나지와 시드니 심포니는 정기 연주회(12월 19일)를 앞두고 있는 서울대생들의 소리를 다듬어줄 예정. 곡목은 말러 교향곡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음악은 '자유' 안에서

지난 23일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난 아슈케나지는 "그 시간에 관광이나 리허설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만 기쁜 일 말고 모두가 행복한 일을 하고 싶었다"며 "음악가는 프로든 아마추어든 개개인이 거대한 우주다. 수십 가지 우주를 한꺼번에 만난다니 생각만 해도 설렌다"고 했다.

아슈케나지는 작년 5월 5일에는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영국의 명문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을 연주했다. 한센병 환자들의 사연을 들은 아슈케나지가 직접 곡을 골랐고, 그때도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 그는 "손이 뭉개진 사람들이 소리에 귀 기울이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한다"면서 "물과 나무가 어우러진 소록도는 매우 아름다웠고, 동시에 그들이 세상에서 잊힌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해준 것 같아 뜻깊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소련 태생인 아슈케나지는 1962년 아이슬란드로 망명했다. 이유는 '자유로운 음악활동을 위해서'. 망명했지만 유대인인 바렌보임처럼 분쟁지역을 찾아 음악회를 갖지는 않는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그 체제를 충분히 체험했다. 지금 북한의 상황은 그보다 더 슬프다. 오직 '자유'를 인정하는 곳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샌드위치를 즐기는 지휘자

정치적이기보다는 인간적이고, 카리스마를 드러내기보다는 세상을 유연하게 보듬는 그. 지난 22일 연주회장에서도 그랬다. 시드니 심포니와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연주하는 공연에서 1악장이 끝나자 관객이 너무 이른 박수를 쳤다. 그는 미소를 머금고 관객과 함께 박수를 쳤다. 웬만해선 보기 힘든 광경이다. 거장에게 따라붙는 '마에스트로(Maestro)'라는 호칭도 정중히 사양한 그는 그냥 '미스터(Mr.) 아슈케나지'라 불러달라 했다. "마에스트로는 어딘지 모르게 닭살이 돋아요. 그냥 아슈케나지씨가 좋지 않아요?"

인터뷰 도중 아이들이 몰려왔다. 160㎝가 채 되지 않는 그는 무릎을 구부리고 아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뒤 카메라를 향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이날 그의 점심은 오페라하우스 매점에서 파는 2.6호주달러(3000원)짜리 햄에그 샌드위치였다.


☞아슈케나지는

1937년 구소련 고르키 출생. 7세 때 학생 오케스트라와 하이든의 곡을 협연한 '피아노 신동'. 18세 때인 1955년 쇼팽 콩쿠르 2위, 이듬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1962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다양하고 세밀한 음색의 변화가 특징. 1970년 지휘에 입문했고, 1974년 지휘자로서 첫 녹음을 했다. 지금은 피아노보다 지휘에 집중하고 있으나 데카 레이블을 통해 독집과 듀오 음반을 활발히 내고 있다.


아슈케나지 피아노 듀오 리사이틀=10월 1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3일 오후 7시 30분 대전 CMB 엑스포아트홀, (02)599-5743

아슈케나지&시드니 심포니=11월 16일(미샤 마이스키 협연), 17일(예브게니 키신 협연)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599-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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