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눈, 네 개의 손… 마법의 선율이 흘렀다

입력 : 2011.09.16 03:19

손열음과 앞 못보는 쓰지이 감동의 피아노 듀오 콘서트
나란히 앉아 연주하자 장애·非장애 하나되고 韓·日의 벽을 넘어 2000여 관객 감동의 밤

한 건반을 두드리는 네개의 손. 앞쪽이 손열음, 뒤쪽이 쓰지이의 손. /이진한 기자
마주 놓인 두 대의 피아노에 두 사람이 각각 앉았다. 두 사람은 약속한 듯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첫 음을 동시에 냈다. 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는 일본인 쓰지이 노부유키(辻井伸行·23), 다른 한 사람은 한국의 차세대 대표 연주자 손열음(25)이었다.

15일 저녁 '손열음&쓰지이 노부유키 피아노 듀오 콘서트'가 열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두 젊은이가 동시에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는 순간, 하나로 통했다. 마이니치신문과 조선일보가 공동주최한 이날 공연은 양국의 차세대 연주자가 합동공연을 한다는 점에서 매력이 더해졌다.

쓰지이 노부유키는 1988년 도쿄에서 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 아나운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선천적으로 앞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도전적이고 쾌활한 성격. 어머니 쓰지이 잇코씨의 교육 덕이다. "보이지 않는다면, 그럴수록 더 도전해야 한다"며 어머니는 시각장애를 가진 아들에게 미술품 관람, 수영, 스키, 등산, 승마를 가르쳤다. 두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쓰지이는 마침내 2009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손열음과 쓰지이의 인연은 바로 2009년 반 클라이번 시상식장에서 시작됐다. 준우승자 손열음은 쓰지이가 우승자로 호명되자 그를 부축해 시상대로 이끌고, 진심어린 축하를 건넸다. 손열음의 '통큰 마음'에 일본 음악애호가들은 "감동"이라며 열광했다.

음악 앞에서 한국과 일본,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15일 예술의전당에서 합동 공연을 가진 손열음(뒤쪽)과 쓰지이 노부유키의 연주 모습.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음악 앞에서 한국과 일본,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15일 예술의전당에서 합동 공연을 가진 손열음(뒤쪽)과 쓰지이 노부유키의 연주 모습.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이날 1부 첫 무대를 장식한 건 쓰지이 노부유키. 매니저의 부축을 받고 무대로 걸어나온 쓰지이는 왼손으로 피아노를 짚고 서서 90도로 허리를 숙여 관객에게 인사한 후, 베토벤의'피아노 소나타 17번'을 연주했다. 그의 깔끔한 연주에 2000여 관객은 갈채를 보냈다.

손열음은 리스트의 연주회용 연습곡 '경쾌'와 '탄식', 차이콥스키의 페인베르그 편곡 교향곡 6번 '비창' 중 스케르초를 연주했다. 특유의 차진 손놀림으로 어지럽게 널린 음표를 바느질하듯 한 땀씩 꿰어맞췄다.

두 사람이 한 피아노에 앉은 건 2부. 쓰지이는 2부에서는 매니저 대신 손열음에게 오른팔을 맡기고 등장, 나란히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피아노 한 대로 두 사람은 드뷔시의 '작은 모음곡'을 들려줬다. 때론 명랑하게, 때론 달콤하게 드뷔시가 객석을 파고들었다. 관객은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쓰지이는 공연 후 "어릴 때부터 건반이 몸의 일부가 되어 버려서 눈에 보이지 않아도 눈앞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처럼 편하게 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관객은 장애와 비(非)장애, 혹은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가 아니라 그저 음악을 느꼈다. 음악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는 것을 이날 두 사람은 증명했다.
최근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 입상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피아니스트로 떠오른 손열음(25)씨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봤지만 타고난 재능으로 피아노계의 신동이 된 쓰지이 노부유키(23)가 연주를 하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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