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 보이체크, 외국인 연출가와 국립극단 처음 만났는데… 짜릿함이 없네

입력 : 2011.08.31 23:19

섬뜩함도 실험 정신도 부족… 연기 좋았지만 평범한 무대

비록 19세기에 쓰인 미완의 작품이지만 '보이체크'는 개인의 비극과 착취의 구조를 절묘하게 배합하면서 현대인의 불안함을 섬뜩하게 포착한 문제작이다. 신자유주의가 활개친 지난 10여년 동안 뷔히너의 '보이체크'가 유난히 자주 공연된 배경에는 이런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게다가 미완성 희곡이 갖는 비약과 파편적인 구조는 그동안 여러 연출가의 예술적 상상력을 불태우는 동인으로 다양하게 작용해 왔다.

가령 가파른 무대에 공사판처럼 비계(飛階)를 세우고 그 위태로운 무대에서 탱고를 추던 부트소프의 '보이체크'나 거대한 수족관에서 배우들을 헤엄치게 했던 기슬리 가다슨의 잔혹한 '보이체크'를 기억해 보라. 여기에 배우의 몸과 의자만으로 참신하고 율동적인 무대를 선보였던 임도완의 '보이체크' 역시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국립극단 제공
국립극단 제공

폴란드 연출가 타데우시 브라데츠키를 초청, 국립극단이 '보이체크'를 제작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무척 평범한 '보이체크'다. 연극계의 기대가 너무 과도했던 것일까.

브라데츠키의 '보이체크'는 성실한 무대였다. 다른 공연에선 자주 삭제되었던 서커스 장면을 부각시켰고, 윤색 과정을 통해 비약이 심한 텍스트에 근거와 배경을 제시해 주기도 했다. 큰 과장 없이 착취자의 냉혹함을 소화한 이호재와 정상철의 연기 역시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과거의 미학적이고 실험적인 '보이체크'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겐 매력 없는 무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무채색 일변도의 무대와 의상은 시각적으로 지루했고, 지나치게 친절한 윤색 과정은 작품의 매력인 시적 비약을 산문의 템포로 늘어뜨렸으며, '재벌'을 비판하겠다는 연출의 관점은 프로그램에선 읽히지만 신자유주의가 금융위기의 환란으로 종결된 이 시대의 관객들에게 이상할 정도로 와 닿지 않았다. 획일적으로 회색 의상을 입고 움직이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아우슈비츠나 북한의 집단수용소 정도가 막연히 연상될 뿐, 연출의 콘셉트는 납득할 만한 무대 언어로 표출되지 않은 것이다.

이 작품은 국립극단이 재단법인으로 출범한 후 처음으로 시도한 외국 연출가와의 합작 작업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앞으로 더 큰 지평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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