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외로움’은 조광화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일관되게 이어지는, 그의 영원한 주제라 할 수 있다. 다만 20년 전 그의 주인공들이 외로움을 두려워하면서 어떻게든 이를 피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면, '됴화만발'에서는 이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견뎌내는 인물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보여주는 양식에 있어서도 지금까지의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검객 괴담'이란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됴화만발'은 문학 텍스트(사카구치 안고의 단편소설 「벚꽃 만발한 나무 아래」)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이를 문학적으로 그리기보다는 무협, 만화, 괴담, 설화 등 B급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조광화는 이를 통해 자칫 무겁고 지루할 수 있는 ‘존재의 외로움’이란 주제를 대중문화적인 문법과 스타일로 친숙하게 그려내고자 한다.
일단 검객들이 주인공이다보니 '됴화만발'에는 유난히 역동적인 장면이 많다. 마치 연극으로 무협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한 액션이 매 장면 펼쳐진다. 하지만 배우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치밀하게 짜인 안무로 이루어져 있다. 정교하게 계산된 움직임들이 밀도 있게 이어지면서 마치 한 편의 무용 작품을 보듯 다이내믹하고 스타일리시한 장면들을 선보인다.
이렇듯 안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스타일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주제를 더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서다. '됴화만발'이 전하려는 정서는 '지독한 외로움'이다. 이는 말로 설명하기보다 '몸'을 통해 느껴질 때 더욱 절절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을 기억한다면 사막의 무사들이 말없이 칼을 휘두르는 순간의 그 한없는 정적과 고독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됴화만발'은 바로 그런,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의 고독을, 움직임을 통해 전하는 작품이다. 즉, 존재의 외로움을 '폼 나게' 보여주는 것이 이번 무대의 핵심인 것이다.
또한 무협, 괴담, 검객 이야기의 공통점은 죽음과 마주하는 공포 속에서 홀로 묵묵히 견디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고대 진시황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려 2,000년이 넘는 세월을 홀로 견뎌온 무사 케이를 비롯해 죽음과 마주하는 모든 검객의 고독을 통해 조광화는 우리 모두가 근원적으로 지니고 있는 '존재의 외로움'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이렇듯 '됴화만발'은 '검객 괴담'이란 형식을 사용하면서도 이를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형식을 통해 보여주는 '외로움'이란 정서 자체를 주제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기보다는 감성으로 느끼고 받아들여야 한다. 서사적인 연극 스타일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마음을 열고 무대를 바라본다면 폼 나게 펼쳐지는 액션 장면을 즐기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가슴 한구석을 저미는 차가운 고독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information
일시 9월 6~25일 평일 20시
토 15시, 18시 / 일 16시(월 쉼)
장소 남산예술센터
문의 02-758-1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