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구르고 손뼉 치고… 오케스트라 수업 아닌 무용시간 보는 듯

입력 : 2011.08.10 23:27

꿈의 악단 엘 시스테마의 시먼 방한… 교수법 시범

1975년 2월 베네수엘라 빈민가의 한 차고.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는 가난과 폭력, 마약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던 청소년 8명에게 바이올린과 첼로를 공짜로 나눠줬다. 아이들은 "언제 총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악기가 무슨 소용이냐"며 화를 냈다. 아브레우 박사는 "들고만 있어도 좋다, 총만 잡지 말라"고 간청했다. 연습은 매일 저녁 8시쯤 시작해 한밤중에 끝났다. 시간이 흐르자 연습이 끝나도 먼저 떠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스페인어로 '시스템'을 뜻하는 '엘 시스테마'(El Sistema·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는 이렇게 싹텄다. 그 후 36년간 200만명의 아이들이 음악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엘 시스테마의 정신은 남미 전역과 미국까지 퍼졌다.

지난 9일 경기도 부천 복사골문화센터에서‘꿈의 오케스트라’어린이 단원들과 연습을 하고 있는 수전 시먼.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지난 9일 경기도 부천 복사골문화센터에서‘꿈의 오케스트라’어린이 단원들과 연습을 하고 있는 수전 시먼.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아브레우 박사와 함께 엘 시스테마를 창단한 수전 시먼(Siman·47)이 지난 9일 한국 아이들 앞에 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국고 지원금 14억5000만원을 들여 지난 5월 25일부터 부천 등 6개 지역에서 하고 있는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에 엘 시스테마 교수법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날 오전 경기도 부천시 복사골문화센터 2층 공연장을 찾은 시먼은 10~11세 어린이 34명과 함께 신나는 오케스트라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바이올린과 플루트, 클라리넷, 첼로를 들고 오케스트라 형태로 앉아 있었지만 시먼의 첫 주문은 "악기를 바닥에 내려놓으세요"였다. "레(re)! 레! 라(la)! 라! 계이름에 맞춰 노래를 불러봅시다. 양손은 무릎을 치면서요. 자, 이렇게!" 아이들은 지시에 따라 악기를 밀쳐 두고 손바닥으로 무릎을 탁탁 치며 계이름 노래를 4분의 4박자 길이로 따라 불렀다. 아이들 사이에서 키득키득 웃음이 번졌다.

수업은 율동이 가미된 무용시간에 가까웠다. 아이들은 악기 연주 대신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면서 리듬감을 익혔다. 시먼은 "생애 최초로 음악을 접하는 2~4세 아이들은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거나 색종이를 자르거나 심지어 잠을 자는 게 효과적이다. 다짜고짜 악기부터 쥐여주면 겁낸다"고 했다. 악기를 쥐는 과정도 하나의 놀이로 만들었다. 악기와 활을 쥐고 첫 음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0에서 5까지 번호로 붙여 시먼이 "3번!"을 외치면 아이들이 활을 쥐고 "5번!" 하면 소리를 내게 한 것. 클라리넷 강사인 손영령(29·김천시립교향악단 단원)씨는 "아이들 눈높이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시먼은 20세 이상 성인이 음악과 친해지려면 "악기보다 합창을 먼저 시작하라"고 제안했다. "나이가 들면 관절이나 근육이 예전 같지 않아서 자신감을 잃기 쉽습니다. 하지만 노래는 누구나 금방 부를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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