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무동… 단원(檀園) 그림, 3차원 회전무대로 재현"

입력 : 2011.06.29 23:57

'화선 김홍도' 연출 맡은 손진책
국악관현악단·창극단·무용단, 11년 만에 합작하는 가무악 무대 "김홍도 그림 속 넘나들며 그의 마지막 순간 그리고 싶었다"

연출가는 외투에 스카프까지 꽁꽁 싸매고 나왔다. 여름에 감기 몸살이라고 했다. 국립극단 예술감독인 그는 신작 연습이 막바지인 데다 외규장각 의궤 귀환 환영식 연출 등 요즘 안팎으로 일감이 몰렸다. 몸은 괴로워도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양말'은 여전했다. "(신을 게) 이것밖에 없다"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손진책(64)이 7월 8일 국립극장에 연극 '화선 김홍도'를 올린다. 국립극장 산하 국악관현악단·창극단·무용단이 2000년 '우루왕' 이후 11년 만에 합작하는 가무악(歌舞樂) 무대다. 개막을 열흘 앞둔 연출가는 "김홍도는 전부터 마당놀이로도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고 그의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단원 김홍도 이전의 화가들은 중국풍의 그림을 그렸다. 고전에 등장하는 선비들의 관념에 머물렀던 것이다. 김홍도는 조선 사람의 얼굴, 생활사, 풍경은 물론 어진(御眞)까지 화폭에 담았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화가였다. 한국의 정체성 회복이라는 의미도 있다."

연출가 손진책은“좋은 연극 만들기가 점점 어렵다. 배우들 각자 배역에 씨를 뿌리고 가꿔야 하는데 누가 열매를 갖다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했다. 뒤에 보이는 그림은 김홍도의‘무동’.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연출가 손진책은“좋은 연극 만들기가 점점 어렵다. 배우들 각자 배역에 씨를 뿌리고 가꿔야 하는데 누가 열매를 갖다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했다. 뒤에 보이는 그림은 김홍도의‘무동’.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1850년대가 배경인 연극 '화선 김홍도'는 김동지(박철호)가 "빌려간 김홍도의 그림을 돌려달라"고 손수재(성기윤)에게 편지를 쓰면서 열린다. 고뿔을 핑계로 응답이 없는 손수재의 집을 찾아간 김동지는 우여곡절 끝에 단원의 그림 '추성부도(秋聲賦圖)' 속으로 들어간다. 김홍도가 말년에 그렸다는 그림이다. 산속에 늙은 선비가 쓸쓸히 앉아 있는 구도에서 적막이 느껴진다. 손진책은 "당대 최고 화가의 마지막 순간을 포착하고 싶다"고 말했다.

'3월의 눈'을 쓴 배삼식의 희곡이다. 그는 "나는 화폭만 만들어 놓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것을 채워야 하는 연출가는 "이상과 현실,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욕심과 근심을 털어버리는 때가 온다. 세상이 한 폭 그림이 될 수도 있는 순간, 김홍도는 어린아이처럼 자유롭다."

무대언어는 대형 스크린과 프로젝터를 통한 영상을 이용하는데 마술이나 판타지는 아니고 연극적 약속으로 쓴다. '추성부도' 말고도 김홍도가 그린 '씨름' '무동' '장터길' '대장간' '시주' '나룻배' 등이 무대에 펼쳐진다. 손진책은 "영상(그림)과 배우들의 재현이 들어오고 나가며 겹쳐질 것"이라고 했다.

공간은 거의 다 비어 있다. 장면 전환을 위해 회전 무대를 쓴다. 성기윤·박철호 같은 뮤지컬 배우의 노래가 왕기석의 창(唱), 한국무용, 국악관현악과 뒤섞인다. 무대 중앙에 노출되는 국악관현악단을 포함해 출연진은 70여명. 손진책은 "그래서 소리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무극은 음악·무용·연극 등으로 갈라지기 전의 공연 형식이고 한국적인 연극과도 통한다"면서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 없이도 관객을 만나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7월 8~1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2280-4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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