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은 기자의 '공연장에서'] 예술의전당 화장실에 클래식이 흐르자…

입력 : 2011.06.29 23:54

전문가들 "공연 몰입 방해" 반대, 일반인은 "예술 공간다워" 환영

26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을 찾은 기자는 화장실에서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선율이 인상적인 피아노곡 '사랑의 인사'였다. 진원지는 화장실 내부 벽 상단에 공기청정기와 함께 붙어 있는 센서식 스피커였다. 보통 화장실 소음에 클래식이 덧실렸다. 일명 '화장실 클래식'이다.

요즘은 백화점과 마트는 물론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도 일반화되다시피한 화장실 클래식이 국내 공연장 화장실로 들어온 것은 뜻밖에 얼마 지나지 않았다. 예술의전당 '화장실 클래식'도 불과 1년3개월 전부터다. 이렇게 늦어진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관객이 연주장소가 아닌 곳에서 공연과 관계없는 곡을 들으면 감상에 방해받을 수 있다는 의견들이 공연장 관계자와 음악계 인사들 사이에 제기됐었다. 한마디로 집중을 방해한다는 것.

그러나 김장실 예술의전당 사장은 "작은 배려가 고객 만족을 높인다"며 1000만원을 들여 시범적으로 센서식 스피커를 설치했다. '완충장치'도 마련했다. 우선 전체 화장실 70개소 중 4곳 그것도 음악당·오페라하우스에서 300여m 떨어진 로비(비타민 스테이션) 화장실에만 설치했다. 음량은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정도인 50㏈로 맞췄다. 사람이 들어가면 바로 음악이 나오다 아무도 없으면 3분 뒤 자동으로 꺼지게 했고, 곡목은 '사계' '월광' '아리랑' 등 클래식·민요 50여곡으로 정했다.

여전히 음악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반대의견이 있다. 안호상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클래식 관객은 기본적으로 음악에 예민한 사람들이라 기호가 다른 음악을 들으면 공연이 주는 여운을 단박에 깨트릴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반응은 '일단 환영' 쪽이다. 회사원 윤승호씨는 "어릴 때 좋아했던 '크시코스의 우편마차'를 듣고 한동안 물을 내리지 못했다"며 웃었고, 예술의전당 직원 이동조씨는 "갈 때마다 '이곳은 예술이 흐르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홈페이지 고객 의견 중 80% 정도가 '예술공간답다' '새롭다'는 반응"이라고 했다.

예술의전당은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내년부터 음악당·오페라하우스 화장실에도 기계 설치를 고려 중"이라며 "고객이 편안해하면서도 음악 감상에도 도움이 되도록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고객별·시간대별 프로그램을 직접 짜는 방식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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