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문화가 산책] 문화·예술적 요구로서의 사치

입력 : 2011.06.26 22:51
박소영 전시평론·기획자

최근에 나는 수입에 비해 좀 과한 소비를 했다. 서울 한남동에 개관한 화랑에서 열린 친한 작가의 전시회에 갔다가 심플한 디자인의 의자에 반해 버렸다. 작은 건물의 지하는 전시장, 1층은 웰빙음식 전문 레스토랑, 2층은 스칸디나비아 빈티지가구를 파는 가게로 구성되어 있다. 각기 뉴욕과 파리서 공부한 젊은 형제가 운영하는 이 건물은 톡톡 튀는 감각으로 충만하다. 코발트색 패브릭이 덮인 덴마크 의자는 실용적이면서도 공간에 포인트를 준다. 덴마크는 국책사업으로 디자이너를 양성하며, 사람과 환경을 위하는 디자인을 추구하여 디자인의 DNA를 바꾼다는 평을 받으며 국제무대에서 외교수단으로 디자인을 활용한다.

나는 또 한 대학의 발전기금을 모으기 위한 전시회에서 날씬한 좌대 위에 놓인 녹슨 금속 소재 미니어처 집을 구입했다. 결코 고액의 작품이 아니지만 12개월 할부를 허락해 준 주최측의 배려 덕분에 나는 부담감을 덜 수 있었다.

2주 전 출간되자마자 구입한 책 '문명과 사치'에서 '사치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류 문명 발전의 견인차'라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프랑스의 행정과 경제 분야의 인재를 배출해내는 국립행정학교(ENA)와 고등상업학교(HEC) 출신의 저자 장 카스타레드는 경영자·창업자학교(EDC)의 럭셔리 브랜드 MBA 과정을 창설한 멤버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럭셔리 상품의 진흥을 국가산업의 주요 축으로 생각한다. 저녁 8시부터 방송되는 TV 뉴스를 가톨릭국가 프랑스에서는 미사라 부르는데, 매 시즌 패션쇼는 각 디자이너별로 이 시간에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이 책은 고대부터 각 문명의 발달을 분석하면서 사치행위가 문명을 형성시키고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물론 저자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넘어서는 고차원적인 행위, 즉 문화·예술적 욕망을 사치의 범주에 포함시키면서 문명 발달의 동력이 된 사치와 단순한 물질적 사치를 엄밀히 구분한다.

서구와 일본이 소비하는 시대를 넘어 저자가 주시한 브릭스(BRICs), 즉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가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한국도 이 범주에 들 것이다. 요컨대 지구촌의 세력이 사치를 구심점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하겠다.

'된장녀', '된장남'으로 상징되는 과시적인 욕구의 소비로서의 사치가 아니라 문화·예술적 요구로서의 사치는 정신적인 풍요로움과 삶의 질을 높이는 원동력이 된다. 요즘 도로에서 젊은이가 모는 고급 외제차를 심심찮게 본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열망이 물질적 사치로 표출된 예이다. 만약 사치가 문화·예술의 영역으로도 확장된다면, 카스타레드의 말처럼, 인간 내면에 잠재된 위대함을 발견하게 해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영혼의 보완물'로 작용할 사치를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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