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웃어!

입력 : 2011.06.25 00:18



삼류 멜로?액션?신파…
장르초월 종합선물세트

-연극 ‘락희맨쇼’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단 하루를 살아도 멋지게 마시고 죽자’. 조선 태조 때 술에 관한 막강한 조직력을 자랑하던 이들이 있었다. 이름하여 ‘락희도당’. 이들은 술로써 풀어내는 진정한 풍류를 알았다. 그런데 큰일났다. 덜컥 금주령이 내려진 거다. 술이 귀해진 그때, 한 주조업자가 실험성에 빛나는 명주를 만들어낸다. 술을 찾아 락희도당이 질질 흘리고 다니는 침을 모아 새벽이슬로 숙성시킨 ‘침이슬’주다. 하지만 곧 발각된 그는 곤장세례에 목숨을 잃고 침이슬주는 하늘의 별이 된다. 그 명주를 확보한 것은 하늘의 장물천사. 하지만 그는 술을 지켜내지 못한다. 지상의 ‘참이슬 소주’와 혼동이 생긴 거다.
 
작품에 ‘임하는’ 자세부터 시작하자. 그것이 낫겠다. 물론 스토리는 있다. 다만 논리는 기대하지 마라. 따지지도 마라. 그냥 웃기는 부분에서 웃어주면 된다. 분석하려 들면 들수록 억장만 무너질 뿐더러 주위에서 정상취급을 못 받을 수도 있다.

연극 ‘락희맨쇼’는 만화보다 더한 황망한 스토리를 내걸었다. 천상의 매력을 얻을 수 있다는 명주 ‘침이슬’을 차지하기 위한 천상과 지상의 사상 최대 분투가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침이슬을 ‘참이슬’ 소주로 착각하고 지상으로 내려온 ‘담배 아줌마’를 쫓아 장물천사가 지구로 잠입하는가 싶더니, 이내 남녀 두 커플의 사랑을 둘러싼 갈등이 오버랩 된다.

이 작품이 표방하는 이데올로기는 단 한 가지. ‘웃기고 웃자’다. 가뜩이나 뒤숭숭하고 삭막한 세상에 한 번 크게 웃을 일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작품의 막강한 취지다. 공연은 ‘쇼’에 걸맞은 종합선물세트로 구성됐다. 춤과 노래는 기본이다. 여기에 슬랩스틱이 섞이고 영상과 만화가 버무려진다. 내용도 복합적이다. 옛날이야기를 살짝 비추더니 곧 현대로 시간을 돌려놔선 삼류 멜로와 액션, 궁상스런 신파까지 총천연색으로 치장을 한다.

이 산만하고 요란한 공연에 빠져들기 위해선 마음을 열어두고 자리를 지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성과 분석력, 리얼리티와 연관성 등을 걸고 나오면 얻어갈 것이 없다. 그렇다고 연극적 요소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요소들을 버무려 나름의 조화를 이뤄낸 것에 작품의 묘미가 있다. 그 충족 조건은 배우의 연기력에서 나왔다. 황당한 상황을 체화한 능청스러운 몸짓과 대사가 오히려 자연스럽다.

1999년 초연했다. 연극 ‘칼로막베스’ ‘삼도봉美스터리’ ‘강철왕’ 등 독특한 캐릭터와 상황설정으로 무장한 극단 마방진의 고선웅 연출 데뷔작이다. 이번 공연은 ‘신촌연극제’ 참가작으로 올려졌다. 배우 윤상화, 호산, 이명행, 조영규, 양명미, 김영노 등이 출연했다. 내세울 뚜렷한 주제를 일체 배제하고 무조건 웃기겠다고 선언한지 12년째다. 서울 창천동 신촌 더 스테이지에서 내달 17일까지 볼 수 있다.

euanoh@ieve.kr/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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