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5.25 23:39
[국립극단 신작 '키친' 리뷰] 헐거운 재미… 앙상블은 좋아
120분짜리 코스 요리를 먹었는데 포만감은 없었다. 어수선한 머릿속을 헹구고 싶었다. 국립극단이 내놓은 신작 '키친(Kitchen·연출 이병훈)'은 애초부터 미각이 아니라 뇌 세포를 건드리는 드라마였다. 거대하고 현대적인 주방 속으로 손님(관객)을 밀어 넣을 때부터 이 연극은 사회의 이면을 들추겠다고 고백한 셈이다.
눈앞에는 영국 어느 레스토랑의 분업화된 주방이 펼쳐져 있다. 공간 변화는 없다. '키친'은 여기서 일하는 다국적 종업원 20여명의 하루를 따라간다. 평범한 출근 풍경으로 시작되지만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의 갈등, 요리사와 웨이트리스의 위계, 고참과 신참의 엇갈린 시선, 인종차별이 뒤섞이면서 긴장이 쌓여간다.
눈앞에는 영국 어느 레스토랑의 분업화된 주방이 펼쳐져 있다. 공간 변화는 없다. '키친'은 여기서 일하는 다국적 종업원 20여명의 하루를 따라간다. 평범한 출근 풍경으로 시작되지만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의 갈등, 요리사와 웨이트리스의 위계, 고참과 신참의 엇갈린 시선, 인종차별이 뒤섞이면서 긴장이 쌓여간다.
점심때가 되자 주방에 소음이 치솟는다. "가자미 그릴 3개!" "갈빗살 스테이크 2개!" 등 주문이 밀려들고 웨이트리스들은 요리를 받아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숨 막히게 반복되는 그 왕복이 압축·폭발을 되풀이하는 뜨거운 엔진 같았다. 윽박지르며 싸우는 괴물로 변했던 그들에게도 각자 꿈이 있었다. 작은 집, 잠, 돈, 여자…. 1막의 마지막에서 그들이 과부하로 혼돈과 무질서에 빠지는 대목, 2막 초반의 서정적인 장면이 좋았다.
하지만 '키친'은 과녁에 정확히 닿지 못했다. 사회극도 사람이 보이고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두 요소는 헐겁게 놓아둔 채 메시지만 날아오기 때문이다. 섬세하게 저울질한 균형감이 필요했다. "우리가 죽어도 이 식당은 남는다. 절대 변하지 않아!"라며 동료를 자극하는 요리사 피터(이갑선)의 연기는 거칠고 들떠 보였다. 대사와 움직임, 감정의 기초공사가 단단해지면 나중에 레스토랑 전체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사건의 파괴력이 더 세질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레스토랑 사장이 "(일자리와 돈을 줬는데) 뭘 더 원해?"라고 거듭 외치는 엔딩의 폭발력도 공허해졌다.
배우가 29명이나 등장하는 '키친'은 규모에 비해 앙상블이 안정적이었다. 상황과 심리를 포착한 김창기의 조명도 인상적이었다. 희곡을 쓴 아널드 웨스커는 한국 관객에게 연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기억되는 작가다.
▶6월 12일까지 명동예술극장. (02)3279-2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