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연극인 김의경 "한국연극은 영원히 아마추어" 호통
실험극제로 변한 서울연극제 - 30년 전통 빛 바래
사회성 신경쓰다 예술의 본질 놓쳐… 진지하게 관람하는 관객만 훌륭
20~30代 연출·배우만 가득 - 현실·인생 안 담고 머리로 만들어
용산참사 작품에 왜 인디언 나오나… 리얼리티 담으려면 더 날카로워야
지난 15일 밤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서울연극협회(회장 박장렬)가 주최한 제32회 서울연극제 폐막식에서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무대에 오른 원로 연극인 김의경(75·공연문화산업연구소 이사장)씨는 "이 기회에 얘기 좀 하겠다"면서 쓴소리를 쏟아냈다. 객석이 숙연해졌다. 그는 미리 준비한 A4용지 4장 분량의 원고를 읽으면서 후배들을 호되게 야단쳤다.
극작가 김의경씨는 1976년부터 극단 현대극장을 이끌어왔고 1980년대에 연극협회 이사장도 지냈다. 현대극장의 대표작으로는 연극 '길 떠나는 가족' '남한산성', 뮤지컬 '빠담빠담빠담' 등이 있다. 17일 대학로에서 만난 김의경씨는 "30년 전통의 서울연극제가 실험극제로 추락한 것 같아 실망했다"면서 "나를 포함해 다 같이 반성하자는 뜻으로 작심하고 쏘아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설익은 과일만 먹어 설사할 지경'이라고 개탄했다.
"희곡부터 문제다. 무대에는 인생과 현실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젊은 작가들, 연출가들은 '추상화된 인생'에 얽매여 있다. 선입견 또는 사상 때문에 인생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머리로 연극을 만들면 관객이 감동하기 어렵다."
―그래도 희곡상이 나오고 대상작도 나왔다.
"희곡상을 준 '여기, 사람이 있다'는 용산 참사를 다뤘는데 느닷없이 인디언이 나온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백인들에 의해 희생되듯이 지금 우리나라가 그렇다는 얘기다. 기왕 사회적인 맥락을 잡았으면 더 날카로워야 하는데 먼 인디언 얘기를 하니 리얼리티(현실성)가 약해졌다. 대상을 준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도 현실의 인간을 그리지 못했다. 대상 감은 아닌데 작년에도 대상이 없었다고 해 하는 수 없이 줬다."
―이번 서울연극제는 사회성이 강해진 인상이다.
"악한 일을 한 사람이 결코 잘살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예술의 윤리다. 연극으로 '세상은 이렇고 강자의 생리는 이런 거야'라고 강의하려고만 해서는 감동을 줄 수 없다. 축제 조직위원장을 (배우 출신) 최종원 의원(민주당)이 맡았는데 미국에 갔다며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최 의원에게도) 한마디 해야 하는데 할 상황이 안 됐다."
최종원 의원은 지난해 서울연극제 때 집행위원장을 지냈고 국회의원 신분이 된 올해는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서울연극협회는 "연극계 선배고 큰 행사에 조언을 받고자 모셨다"고 밝혔다.
―대학로는 극장이 150개나 될 만큼 비대해졌지만 연극은 퇴행했다는 지적이 있다.
"무대는 경험이 중요한데, 연극 하기가 너무 쉬워졌다. 누구든 500만원만 있으면 연극 한 편을 올린다. '조연출 10년 해야 무대를 안다'는 옛말이 돼버렸다."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나.
"요즘 연극은 대부분 20~30대끼리 만든다. 대학로에서 20년, 30년 피땀 흘렸던 40~60대 배우들은 다 어디로 갔나? 연극은 축적을 통해 발전하지, 하루아침에 콘크리트 붓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작가부터 제대로 키워야 한다.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대로, 프로는 프로대로 길을 열어주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커가야 한다. 세대별로 배우가 함께 참여하고 지원금 정책도 손질해야 한다."
―지원금으로 버티는 극단이 많다.
"지원금을 받으면 연극 하고 못 받으면 안 하는 극단을 여럿 봤다. 이래 가지고는 조무래기들의 실험밖에 안 된다. 지원을 한시적으로 중단하는 '지원금 안식년제'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야단만 쳤는데 칭찬할 게 있다면.
"관객은 훌륭하다. 그 지루하고 엉터리 같은 공연을 보는데 객석에 기침 소리 하나 안 들리더라. 현실은 슬프지만 지혜를 모으고 희망을 가꿔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