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 치고 노숙? 이것도 다 연극입니다"

입력 : 2011.05.03 23:33

극단 뛰다의 유목 연극 '쏭노인 퐁당뎐' 연출가 배요섭
화천서 생활하며 공연 소재 발굴…
한 달간 길에서 먹고 자며 서울·안산 등 4곳 축제 돌 예정
"추운데다 불침번도 서야 하지만 관객과 친밀해져 가는 값진 통증"

멀리서 보면 베이스캠프 같다. 지름 11m, 높이 6m의 돔형 텐트를 중심으로 작은 텐트 예닐곱 개가 한 덩어리로 웅크려 있다. 장대 위에서는 종이와 비닐로 만든 물고기들이 춤을 췄다. 맑고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3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호수동의 한 광장. 5월 한 달간 연극 '쏭노인 퐁당뎐'(연출 배요섭)과 함께 유랑하는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지난달 29일 여기에 짐을 풀었다. 이날로 길에서 숙식한 지 닷새째. 텐트 안은 야전침대와 침낭, 인형과 소품으로 들어차 있었다.

한 달간 유목 연극을 하는 연출가 배요섭은“샤워는 찜질방에서 한다. 화천이 그립다”고 했다. 뒤로 보이는 텐트가 그와 단원들의 집이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한 달간 유목 연극을 하는 연출가 배요섭은“샤워는 찜질방에서 한다. 화천이 그립다”고 했다. 뒤로 보이는 텐트가 그와 단원들의 집이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도시 한복판에서의 유목이라니. 연출가 배요섭(41)은 "혼란스럽고 춥고 시끄럽다. 누가 인형을 훔쳐갈까 봐 밤에는 1시간씩 불침번도 선다"면서 "힘들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값진 통증"이라고 했다.

뛰다의 주소는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신읍리 951-10번지. 이 극단 단원과 가족 16명은 꼭 1년 전 화천의 한 폐교(신명분교)로 이주해 '시골마을 예술텃밭'이라는 문패를 걸었다. 아이들이 떠난 운동장, 버려진 땅에 예술의 터를 잡은 것이다. 땅값과 임대료가 비싼 경기도와 달리 화천군은 무상으로 폐교를 내줬다. 배요섭은 "도시를 벗어난 지역에서 다양한 만남을 통해 창작 환경을 넓히고 싶었다"고 말했다.

화천의 폐교에서 진행된‘쏭노인 퐁당뎐’연습 장면. /뛰다 제공
화천의 폐교에서 진행된‘쏭노인 퐁당뎐’연습 장면. /뛰다 제공

"이번 작품은 두 달 동안 운동장에서 만들었어요. 40m×20m 크기의 천(물의 상징)을 날려야 해 도시에서는 연습이 불가능합니다. 오전 9시에 모여 청소, 땔감 구하기 등 울력을 하고 배우 훈련, 공연 리허설을 해요. 도시보다 느리지만 시야는 넓어졌습니다. 흙을 털고 쓸고 다지는 게 노동이지만 에너지가 되기도 합니다."

뛰다는 화천에서 이야기 발굴에 나섰고 '쏭노인 퐁당뎐'은 거기서 걷어올린 첫 수확이다. 댐으로 수몰된 옛집에서 낚시터를 운영하며 살아가던 쏭노인이 거꾸로 물고기들에게 잡히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배요섭은 "화천에는 화천댐과 평화의 댐이 지어지면서 두 번 수몰된 땅이 있다"면서 "'쏭노인 퐁당뎐'은 거기 살던 송남석 할아버지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한 야외 인형극"이라고 했다. 물고기의 관점으로 인간 세상을 바라본다.

이 작품은 5일 개막하는 안산거리극축제부터 하이서울페스티벌, 의정부음악극축제, 국립극장 청소년예술제까지 한 달 동안 4개 축제를 돈다. 이동식 텐트 설치부터 공연에 이르기까지 1주일의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유목 연극이다. 시민도 구경꾼으로 머물지 않고 인형 제작과 장면 구성에 참여한다.

"관객과 좀 더 친밀하게 만나야 한다는 고민에서 시작한 작업입니다. 돌궐족 어느 장군의 말 중에 '성을 쌓으려는 자는 망하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는 살아남는다'를 새기며 만들었어요. 예술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쏭노인 퐁당뎐'은 뛰다와 호주 인형극단의 합작품이다. 뛰다는 화천에서 고등학교와 주부극단의 연극 교육, 마을잔치 등에 참여하며 '일상 속 예술'을 가꾸고 있다. 도시에서 느슨한 창작집단이었다면 시골에서는 긴밀한 생활공동체로 바뀐 것이다. 화천의 땅심으로 얻은 희망적인 변화는 뭐였을까. 연출가는 "이주하고 정착하느라 힘겨운 시기였는데 뛰다 가족에 아이 셋이 생겼다"면서 웃었다. 단원들이 감자·고구마·상추 씨를 뿌린 화천의 텃밭에도 지난주 작은 새싹이 돋았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