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재료는 싸구려지만 사람들에게 힘을 줘"

입력 : 2011.04.30 00:08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로 불리는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가격 결정 사람들이 심리적 만족감 얻었으면
이중섭의 '황소'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렇다. 내 작품의 재료는 싸구려다. 그러나 그걸 광이 나도록 닦으면 빛이 난다. 내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심리적 만족감, 자신을 고양시킬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영국 작가 데미언 허스트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로 불리는 미국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Koons·56)가 29일 오후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쿤스는 작품 '세이크리드 하트(Sacred Heart·신성한 마음)'가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관 트리니티 가든에 설치된 것을 기념해 이날 내한했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 그의 작품은 강아지·토끼·꽃 같은 일상적 소재를 매우 커다랗게 확대한 것이다. 재료는 스테인리스 스틸. 거대한 풍선처럼 보이지만 작품 가격은 수백억원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가지만 "키치(싸구려 취향)다", "지나치게 대중 인기에 영합한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내게‘아트(art)’란 세속적인 것을 초월해 인류의 문명과 공동체의 계몽에 기여하는 것을 뜻한다.”29일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관 6층 트리니티 갤러리에 설치된 작품‘세이크리드 하트’앞에 선 제프 쿤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내게‘아트(art)’란 세속적인 것을 초월해 인류의 문명과 공동체의 계몽에 기여하는 것을 뜻한다.”29일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관 6층 트리니티 갤러리에 설치된 작품‘세이크리드 하트’앞에 선 제프 쿤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2008년 6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작품 '풍선꽃'이 280억원에 팔렸다. 싼 재료인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작품이 왜 이렇게 비싼가?

"예술품 가치는 재료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그걸 즐기고,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가격을 결정하는 거다. 내 작품엔 공이 많이 들어간다. 틀에서 떼어내며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만만찮게 들어간다."

이번에 신세계백화점에 설치된 '세이크리드 하트'는 밸런타인데이 때 주고받는 하트 모양 초콜릿을 연상시킨다. 높이는 3m73cm, 무게는 약 1.7t이다. 작품의 가격은 약 300억원이다. 시리즈인 이 작품은 파랑·금색·빨강 등 여러 가지로 신세계 것은 보라색에 금빛 리본을 묶은 것이다. "보라색은 로맨틱하면서도 영적인 빛깔"이라는 쿤스는 "작품을 통해 낙관주의와 영적 성숙을 얻길 바란다"고 했다.


―굳이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 논란을 부를 필요가 있나.

"스테인리스 스틸은 프롤레타리아적인 재료다. 그러나 표면을 윤이 나도록 다듬으면 값비싼 재료처럼 보인다. 화려한 바로크 건물에 들어가면 자기가 부자가 된 느낌이 들지 않나. 난 사람들이 내 작품에서 심리적 만족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거울처럼 매끈한 표면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기를 긍정하고,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는 쿤스의 작품‘리본을 묶은 매끄러운 달걀’.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는 쿤스의 작품‘리본을 묶은 매끄러운 달걀’.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당신은 '예술가'라기보다 '주식회사 CEO'에 가깝다는 주장도 있다(그의 뉴욕 작업실에는 직원이 100여명이다).

"사람들이 그러는 건, 그렇게 말하면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대량생산 하지 않는다. 1년에 회화는 8점, 조각은 10개가량 제작한다. 내 작업실은 '공장'과는 거리가 멀다. 난 상업적이지 않다. 예술가로서 인류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

쿤스는 1990년대 초, 포르노 배우 치치올리나와 결혼했고, 아내와의 부부행위 장면을 사진과 조각(메이드 인 헤븐)으로 공개해 뜨거운 논란을 빚었다. 둘은 몇년 후 이혼했다.

2001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560만달러(72억여원)에 팔린 1988년 작‘마이클 잭슨과 버블’. /조선일보 DB
2001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560만달러(72억여원)에 팔린 1988년 작‘마이클 잭슨과 버블’. /조선일보 DB

―논란이 될 것을 알면서 왜 그랬나.

"당시 나는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몸(body)'이라는 상징(메타포)을 즐겨 사용했고, 그 작품은 그의 일환일 뿐이었다."

―후세가 어떤 예술가로 기억해주길 바라나?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이 불안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난 사람들이 내 작품을 통해 그 불안감을 잊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렵지 않고, 편안한 작품을 한다."

인터뷰를 마친 쿤스에게 "한국 미술품 중 좋아하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오늘 새벽 3시에 도착해 오전에 삼성미술관 리움에 들러봤는데, 이중섭의 '황소'와 복숭아 모양 연적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 세계적 작가를 매료시킨 건 지극히 한국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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