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스타인·아바도·카라얀順
영국의 음악 전문지 'BBC 뮤직 매거진'이 현역 유명 지휘자 100명에게 물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지휘자를 3명만 뽑아주세요." 영국 출신 지휘자뿐 아니라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구스타보 두다멜, 주빈 메타, 발레리 게르기예프, 마리스 얀손스 등 이름 있는 지휘자들이 두루 참여했고 결과가 이 잡지 4월호에 실렸다.
이 설문에서 1위는 오스트리아 출신 카를로스 클라이버(Kleiber· 1930~2004)가 차지했다. 2위부터 5위까지는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레너드 번스타인, 클라우디오 아바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6위부터 10위까지는 사이먼 래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피에르 불레즈,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나란히 올랐다. 번스타인이나 카라얀에 비하면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클라이버가 쟁쟁한 대가들을 제치고 최고 영예를 차지한 것은 '이변'이었다. 'BBC…'도 이를 두고 '대단히 흥미로운(fascinating) 결과'라고 표현했다. 한국 출신 지휘자는 상위 20위는 물론이고 질문 대상자 100명에도 속하지 못했다.
1930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아버지 에리히 클라이버(1890~1956)의 뒤를 이어 지휘자의 길로 들어섰다. 아버지 클라이버는 1923년부터 12년간 독일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을 이끌며 명성을 떨쳤지만 오페라 '룰루'를 나치 정권이 '퇴폐 음악'이라고 낙인 찍자 이에 항거, 1935년 가족을 데리고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아들의 이름도 독일식 '칼'에서 남미식 '카를로스'로 바꿔버렸다.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하는 것을 혐오해 아들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20세가 된 클라이버는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은 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며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 1954년 포츠담에서 오페라 '가스파로네'를 지휘하며 정식 데뷔했다. 74년 바그너 음악의 성지로 꼽히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하면서 정상급 지휘자로 이름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