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위해 밤마다 치킨·라면… 10㎏ 찌워… 공연 때마다 맥주 여섯캔 마시는 배우도
#1. 살
"100㎏을 만들어라!" 석 달 전 연극 '살'(이해성 작·안경모 연출) 오디션에 뽑힌 배우 김동완에게 연출가가 말했다. 당시 그의 몸무게는 84㎏. 맡겨진 배역은 고도비만에 걸린 외환딜러 신우였다. 김동완은 탄수화물 보조제를 복용하며 밤마다 치킨 한 마리에 라면, 맥주를 먹었다. 연습실에서도 "가능한 한 움직이지 말고 틈틈이 간식을 먹어라"라는 주문을 받았다. 공연은 지난 1일 남산예술센터에서 개막했고 현재 김동완의 체중은 아침에 93㎏, 밤엔 94㎏이다. 그는 "사실 밥맛을 잃었다"고 했다.
#2. 술
5일 밤 대학로 컬처스페이스 엔유. 연극 '트루 웨스트'(True West·연출 유연수)는 사막을 떠돌다 5년 만에 집에 돌아온 형 리(배성우)가 시나리오 작가인 동생 오스틴(이은형)에게 "머릿속에선 뱅뱅 도는데 종이에 옮겨 적을 순 없는 기막힌 실화가 있다"고 말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배성우는 등장할 때부터 맥주 캔을 홀짝이고 있다. 막이 내릴 때까지 그는 다섯 캔을 더 따 마신다. 형제의 갈등이 격렬해질 때마다 맥주를 바닥과 몸에 뿌리기도 하는데, 냄새며 거품이 '진짜배기'다.
헛것(가짜)으로 진실을 비추는 게 연극이지만 무대에도 때론 진짜가 필요하다. '살'의 주인공 신우는 간암에 걸린 어머니(강애심)에게 간을 이식하려면 살을 빼야 한다는 점, 그리고 끄트머리에 알몸으로 나온다는 점에서 퉁퉁한 살집이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김동완은 "연기도 어렵지만 살을 찌우고 관리하는 것도 큰 부담"이라고 했다.
'트루 웨스트'처럼 배우들이 진짜 술을 마시는 연극도 적지 않다. 지난달 폐막한 연극 '아트'는 마지막에 병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있다. 제작사 악어컴퍼니 관계자는 "'트루 웨스트'가 냄새 때문에 진짜 맥주를 쓴다면, '아트'는 세 남자가 대판 싸워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병을 따는 소리가 효과적인 음향 코드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많이 마시는 배우는 공연 중 맥주 3병에 소주 1병을 해치웠다'는 전설이 있는 연극 '거기'는 진품 병맥주·와인·소주·보드카를 마신 노총각들의 취중 심리 변화를 흥미진진하게 포착했다.
진짜 술은 몇 년 전부터 소극장 연극에 유행한 PPL(Product Placement·간접광고)과 관련이 있다. '트루 웨스트'의 경우 한 태국 맥주회사의 '납품'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연극이 PPL과 관계없이 안정적인 진행을 위해 '가짜 술'을 제조해 쓴다.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연출 민복기)는 공연 전 막내 배우가 소주병에 물을 채운다. 소주는 물, 맥주는 보리차로 만들고 적포도주는 포도 주스와 물을 섞어 그럴싸한 빛깔을 낸다. 탄산음료 캔에 라벨만 맥주로 바꾸는 수법도 있지만 통제하기 어려운 트림이 문제다. 최근엔 소주병이나 맥주 캔에 작은 구멍을 뚫고 주사기로 '짝퉁 술'을 넣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병이나 캔을 딸 때 소리가 실감 나야 관객이 더 몰입하기 때문이다.
공연 중 '술 사고'는 없었을까. 33년 경력의 연출가 심재찬은 "하이퍼 리얼리즘(극사실주의) 연극이 많아지면서 '진짜'로 하는 연극이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술 때문에 공연을 망쳤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직업의식이 투철해져서 요즘 그랬다가는 바로 '아웃'"이라는 거다.
▶'살'은 17일까지 남산예술센터. '트루 웨스트'는 5월 1일까지 컬처스페이스 엔유.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