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 기교를 넘어서다… 지용&신현수

입력 : 2011.03.15 16:27

성남아트센터의 마티네 콘서트는 올해 리스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Liszt vs. Paganini'라는 제목으로 특별한 무대를 마련한다. 피아니스트 지용과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가 리스트와 파가니니의 현신現身이 되어 ‘따로 또 같이’ 연주한다.

리스트(1811~1886)와 파가니니(1782~1840)는 닮은꼴이다. 두 사람은 각각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에 있어 당대 최고의 비르투오소로 손꼽혔으며, 직접 작곡한 초절기교의 곡들로 청중을 열광시켰다. 리스트는 선배 음악가 파가니니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는데, 20대 초반 프랑스 파리에서 파가니니의 광기 어린 연주를 듣고 매료된 뒤부터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파가니니의 곡을 피아노용으로 편곡하거나 주제 선율을 차용해 변주곡을 작곡하며 둘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두 작곡가의 작품을 나란히 감상할 기회는 의외로 흔치 않은 편이다.

피아니스트 지용
피아니스트 지용
지용… “리스트가 어렵냐고요? 오히려 편해요”

지용은 현재 학업(줄리어드 음악학교) 때문에 미국 뉴욕에 머물고 있다. 인터뷰차 전화를 걸자, 그는 대학생으로서 보낸 첫 학기가 어땠는지 상기된 목소리로 들려줬다. 그러다 화제가 ‘리스트’로 옮겨가자 자못 진지해졌다. 지용은 이번 마티네 콘서트에서 리스트의 '위안'과 '메피스토 왈츠', 리스트가 피아노용으로 편곡한 슈베르트 가곡 등을 연주한다. 모두 데뷔 앨범 '리스토마니아 Lisztomania'에 수록된 곡들로 지난해 11월 독주회 때 처음 연주해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리스트의 곡은 기교적으로 어렵기로 유명하죠. 하지만 제게는 바흐나 베토벤, 모차르트보다 쉬워요. 오히려 마음껏 즐기며 칠 수 있는 곡들이에요. 한 번도 제가 마스터해야 할 대상이나 숙제로 여긴 적이 없어요.”

다른 피아니스트가 들으면 가늘게 실눈을 뜰지 모를 이야기다. 그러나 이어지는 지용의 설명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리스트는 작곡가이기 전에 피아니스트였잖아요. 그래서 연주자 입장에서 손가락 움직임이 굉장히 편하도록 곡을 썼어요. 비르투오소적인 패시지라고 해도 청중의 귀에 어렵게 들리는 것과 실제 연주상의 어려움은 좀 다르거든요. 저는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리스트의 음악 속에서 기교가 아닌 그의 영혼과 인간미를 느껴요. 그래서 제 안의 감정과 상상 속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요.”

지용은 지난 독주회에서 음악을 영상, 미술, 패션 등 다양한 예술과 콜래보레이션해 마치 쇼처럼 꾸몄다. 듣기만 하는 연주회가 아니라 눈으로 보는 색다른 무대였다. 이번 무대에서도 연주와 함께 미디어아트를 선보인다.

“제가 꿈꿨던 방식으로 연주회를 마쳤을 때 기분이 최고였어요. 음악에 있어서는 전통을 유지하면서 그 외적인 부분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 성공했으니까요. 앞으로 더 재미있는 것들을 실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느꼈어요. 저한테 독주회란 저만의 개성과 뉘앙스를 보여줄 수 있는 쇼이면서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에요.”

그는 “앞으로도 지용 스타일의 ‘아트’를 보여주고 싶다”며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단 한 명이라도 공감하는 사람이 있는 한 기꺼이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
신현수… “파가니니 안에서 나만의 음악과 테크닉을 발견했죠”

신현수는 2004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1위 없는 3위를 차지했다. 당시 열일곱 살로 역대 최연소 입상자였다. 10대에 이미 파가니니에 대한 남다른 해석력과 연주력을 공인받은 것이다.

“파가니니의 음악은 다이아몬드처럼 정교하면서도 눈부시도록 화려하죠. 바이올린 전공자라면 어렸을 때부터 평생 파가니니의 곡을 연주해야 해요. 특히 카프리스의 연주나 음반은 셀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와요. 그래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는 게 매우 중요하죠. 저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파가니니 카프리스를 연습했는데, 선생님이 이 곡만은 절대 다른 연주자의 음반을 듣지 말라고 하셨어요. ‘자칫하면 남을 따라 하게 되고, 그러면 너의 음악은 사라진다’고 말씀하셨죠.”

신현수는 음표를 하나하나 천천히 해석하면서 자신만의 파가니니 연주를 완성했다. 그는 “때때로 높은 벽에 부딪치는 순간이 찾아왔지만 계속 연습하다보면 그 벽이 무너지고 또 무너지면서 점점 쉬워졌다”며 “그런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엑기스가 나오더라”고 했다.

그가 그렇게 고심해가며 연습했던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중 제24번을 이번 콘서트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이 밖에 밀스타인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파가니니아나', 밀스타인이 편곡한 쇼팽 '녹턴' C#단조 등을 연주한다. 지용과는 파가니니의 칸타빌레 D장조에서 호흡을 맞춘다.

한때 제대로 된 연주용 악기가 없어 고심하던 신현수는 이제 일본음악재단이 임대해준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임대해준 과다니니를 번갈아 사용하고 있다. 이번 무대에서는 과다니니로 연주한다.

그는 “요즘에는 음악 외에는 별다른 관심사가 없다고 할 만큼 음악에 대한 집중력이 높다”고 말했다. 일본을 비롯한 해외 연주가 크게 늘면서 레퍼토리를 확장하느라 연습량은 많아졌지만, 아직까지는 낯선 청중 앞에서 새로운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게 마냥 즐겁기만 하다. 그는 마티네 콘서트에서 또 다른 청중을 만날 수 있어 마음이 설렌다며 활짝 웃었다.

“주부들이 많이 오신다니 저희 어머니께 들려드린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연주하려고요. 이날은 오전부터 파가니니를 연주해야 하니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열심히 손가락을 풀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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