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사라졌다죠?"… "취임전 일, 묻지마라"

입력 : 2011.03.11 03:09   |   수정 : 2011.03.11 08:3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없어졌는데도
관장은 책임의식 없이 전임자 탓만…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국가기관이 국가 소유의 물건을 분실했다. 3년 전 일이다. 그 사이 기관장이 바뀌었다. 물건은 아직 못 찾았다. 내부인이 빼돌렸는지, 누가 침입해 훔쳐갔는지 여부도 모른다. 경찰에 신고도 안 했다. 분실 당시 책임선상에 있었던 인물에 대한 문책만 있었다. 그리고 현 기관장은 "취임 전 일이라 난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배순훈) 이야기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2008년 12월 한국 근대화가 주경(朱慶·1905~1979)이 1930년에 그린 드로잉 작품 '인물습작'을 분실했다. 미술관은 9일 한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자 관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갖고 해명자료를 냈다. '당시 이 사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하지 않았던 이유는 작품의 출납입 과정에서 발생한 업무 과실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라고 추정되며 당시 이런 결정을 한 인사권자의 정책적 판단이 그러하였다고 생각된다.' '인사 조치를 받은 업무 담당자는 유종하(대한적십자사)총재 그림 도난사건과도 연관이 있는 인물로 (…) 해당 업무를 부여했던 인사가 문제가 있었다고 보여지며….'

궁금증이 생겼다. 당시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만으로 이 사건은 끝난 것인지, 어떤 경로로 없어졌는지는 파악했는지, 이제라도 경찰 수사를 의뢰할 생각은 있는지, 되찾을 생각과 방법은 있는 것인지…. 10일 오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실을 찾아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2008년에 끝난 일"이라는 얘기였다.

배 관장을 비롯한 현 국립현대미술관 직원들은 억울한 대목이 있을 것이다. 배 관장이 부임한 것은 지난 2009년 2월. 사건은 그 2개월 전에 일어났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특별감사도 받았고, 책임자 징계도 끝났다. 분실된 드로잉은 가로 18.6㎝, 세로 26.3㎝짜리, 분실 당시 가액은 100만원 정도였다. 한국근현대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품도 아니다. 1990년대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유족들이 갖고 있다 사라졌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국가기관에 기증한 작품이 사라진 것은 경우가 다르다.

배 관장은 대기업 CEO 출신이다. 기업들의 제품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는 기본이다. 사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제품 애프터서비스를 거부한다면 소비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주경의 가족처럼 많은 예술가의 유족이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국가기관에 기증한다. '국가기관이니까'라는 믿음 때문이다. '현재 기관장이 누구니까' 기증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0일 한 미술계 원로는 이 사건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매년 소장품 전수(全數)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김윤수 전(前) 관장 해임과 미술관 법인화에 불만을 품은 내부 인사가 '관장 흔들기용'으로 이미 지나간 사건을 언론에 흘린 것 아니냐"고 추측하기도 한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런 정치적 해석이 이런 식의 대응을 합리화해주지는 못한다. 배 관장 말처럼 임기 전의 일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분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임 때 일이라 나는 모른다"는 변명은 차선책도 안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사라진 것이 단지 78년간 건재했던 작품 '인물습작'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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