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공연 아닙니다… 상영 중입니다

입력 : 2011.03.09 03:01

[영상이라도 좋다, 명품 오페라 감동 느낄 수 있다면…]
뉴욕 '메트' 최신 작품들, 워커힐·호암아트홀 상영
중간중간 해설자도 등장…
뮤지컬·클래식 섭렵 이어 오페라 재미에
눈 뜬 20·30대가 관객 67% 차지

지난 1일 오전 11시 워커힐호텔. 200여명의 관객은 이미 지하 1층 워커힐 시어터에서 클로렐라 버거와 딸기 후식을 곁들인 브런치(아침 겸 점심)로 가볍게 배를 채웠다. 그리고 극장으로 올라와 오페라 '투란도트'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풍부한 성량과 선 굵은 표정 연기가 일품인 마리아 굴레기나가 투란도트 공주를, 굵직한 음색과 지적인 외모가 돋보이는 마르첼로 지오르다니가 칼라프 왕자를 맡아 열연하고 있다. 완벽한 고급형 공연.

그러나 이 공연에는 배우가 나오지 않는다. '메트 오페라 브런치' 행사는 4K(8.8 메가 픽셀)급 대형 스크린을 통해 녹화된 오페라 영상을 감상하는 방식. 극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편집되어 상영되고, 중간 중간 전문 해설가가 스크린 앞으로 나와 해당 오페라에 대해 설명해준다. 해설을 맡은 음악평론가 이용숙씨는 "투란도트에서 '투란'은 중앙아시아의 어느 나라, '도트'는 영어 도터(daughter)의 어원"이라며 "그래서 투란도트는 '투란의 딸'이란 뜻"이라고 얘기했다.


메트의 최신(2010~2011시즌) 오페라를 스크린으로 감상하는 프로그램이 이번 달부터 서울에서 1년 내내 펼쳐진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호텔(광장동)과 호암아트홀(순화동)이 각각 진행하는 '스크린으로 보는 오페라'다.


 

대형 스크린 위에 뜬 실황 녹화 영상이지만 화질과 사운드는 뉴욕 현지의 본 공연장 못지않다. 서울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상영’중인 메트 오페라‘투란도트’. 관객은“싼값에 고급 오페라를 볼 수 있어 좋다”고 환영하지만 전문가들은“화면은 그냥 화면일 뿐”이라며“실제 공연이 주는 생동감과 환희를 잊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워커힐 호텔 제공
대형 스크린 위에 뜬 실황 녹화 영상이지만 화질과 사운드는 뉴욕 현지의 본 공연장 못지않다. 서울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상영’중인 메트 오페라‘투란도트’. 관객은“싼값에 고급 오페라를 볼 수 있어 좋다”고 환영하지만 전문가들은“화면은 그냥 화면일 뿐”이라며“실제 공연이 주는 생동감과 환희를 잊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워커힐 호텔 제공

2007년 국내 최초로 이미 메트 오페라 영상을 공연장에서 상영한 바 있는 호암아트홀도 오는 18일부터 '스크린 위 오페라'를 선보인다. 브런치도, 중간 해설도 없지만 오페라 한 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보여주기 때문에 보다 심도 있는 감상을 원하는 애호가들이 선호한다. 바그너가 26년간 작곡에 매달린 4부작 '니벨룽의 반지' 중 1부인 '라인의 황금'.

CGV압구정은 지난해 12월부터 메트 오페라 2010~2011 시즌을 담은 실황 영상을 매월 한 편씩 토요일마다 상영하고 있다.

HD TV보다 4배 이상 선명한 화질, 7.1채널 음향시스템…. 현장에는 박진감이 넘친다. 그러나 이런 오페라는 어디까지나 '복제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스크린 속 오페라'가 부쩍 늘어난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1일 워커힐호텔 관객은 20·30대 관객이 67%로 40·50대 관객 31%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그중에서도 30대 관객은 38%. 워커힐측이 당초 예상한 주요 관객층은 40·50대 중산층 부부였다. 음악평론가 고종환씨는 "뮤지컬 관람으로 공연 재미에 눈 뜬 젊은이들이 얼마 전부터 클래식 음악회를 찾아가 청음 수준을 올렸고, 음악·연극·미술·문학(대사)이 복합적으로 얽힌 오페라에 드디어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풀이했다.

현장에서, 인터넷으로 전 세계 1급수 공연을 두루 섭렵한 국내 관객들은 이제 "녹화 영상이더라도 현지 느낌이 물씬한 고급 공연을 보겠다"는 입장이다. '메트'라는 브랜드도 이들 선택에 '자부심'을 더해준다.

그러나 공연장에서 영상을 틀고 오페라 강좌를 여는 건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 녹화 영상 관람은 '반쪽짜리' 감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음악 칼럼니스트인 유정우씨는 "클래식 음악회나 오페라는 궁극적으로 공연장에서 진짜로 봐야 온전한 감동을 얻을 수 있다"면서 "스크린 오페라는 실제 오페라의 매력을 제대로 만끽하기 위한 예습 과정으로서만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다소 어려운 문화로 여겨지던 오페라가 이제 일반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선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시어터는 뮤지컬 '투란도트'의 뉴욕실황 공연을 고화질로 촬영해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선보였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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