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3.04 16:53
연극 ‘노인과 바다’
헤밍웨이 동명소설 원작
노인 회상 형식으로 각색
내레이터 탓에 다소 산만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84일 동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다. 한평생을 쏟아 부으며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바다가 던진 인사치곤 가혹하다. 마을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처럼 저주를 받은 것인가. 노인은 말이 없다. 그저 85일째 되는 날을 준비할 뿐이다. 그리고 다시 바다 한 가운데. 드디어 노인은 바다로부터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선물을 받는다. 거대한 물고기를 낚아챈 것이다. 이후 3일간의 밤낮 없는 사투가 벌어진다. 황망한 바다에는 노인의 혼잣말만 울린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포기하기 때문에 패배당하기 쉬운 법이지. 그래도 난 절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아.” 연극 ‘노인과 바다’다.
“내일 마을사람들이 보고 깜짝 놀라겠지.” 낡은 고깃배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거대한 물고기를 매달고 마을로 돌아온 노인은 마지막 지친 목소리를 내며 읊조린다. 물고기와 벌인 사투는 곧이어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상어떼와의 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시간도 모두 지났다.
1952년 발표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연극 ‘노인과 바다’는 고독과 남모르는 처절한 싸움을 벌여야 하는 인간의 고뇌를 말한다. 덩그러니 낡은 배 한 척이 전부인 무대 위에서 단 두 명의 배우가 그 쉽지 않은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다.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무대의 성공 여부는 반반이다. 텍스트를 장려한 무대언어로 치환해 공간의 한계성을 극복해내면 성공이다. 하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완벽한 원작이 질곡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해도 원작 이상을 만들어낼 수 없는 탓이다. 내용이 이미 잘 알려져 있다면 할 일은 하나 더 있다. 반감된 스토리의 재미를 다른 어떤 요소로 극복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노인과 바다’는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물 한방울 없이 바다의 이미지를 적절히 형상화했으며 텍스트 속 노인을 그대로 무대로 꺼내와 ‘다 아는 이야기’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탄생시킬 수 있었다.
패배한 승리 혹은 승리한 패배의 역설이 가지고 있는 주제는 흥미롭게 전달됐다. 바다 위에 난자한 물고기의 핏빛 살점은 승리와 실패를 동시에 말해준다. “넌 물고기로 태어났고 난 어부로 태어났기 때문에 난 널 죽여야 해.” 노인의 이 급박함은 조명이 대신 전달해줬고 상어떼에 물어뜯기는 특수제작된 물고기 역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원작과 다른 점은 내레이터를 세운 것. 소년은 성장한 청년이 되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노인을 회상하고 상황을 설명한다. 원작에 없는 이 설정에는 난해하고 딱딱한 고전을 자유롭게 풀어주려는 의도가 반영됐다. 하지만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은 오히려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문제를 안았다. 덕분에 지루하진 않지만 다소 산만한 작품이 됐다.
지난해 초연하고 ‘2인극 페스티벌’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노인 역을 연기한 배우 정재진이 최우수연기상을 거머쥐면서 탄탄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서울 연건동 대학로극장에서 내달 3일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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