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2.20 13:31
'아시아계 미국작가의 한계?'
브로드웨이 진출을 내건 창작 뮤지컬 '천국의 눈물'이 엇갈린 평가 속에 국립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천국의 눈물'은 당초 JYJ 김준수를 비롯해 글로벌 스타 브래드 리틀, 윤공주 등 호화 캐스팅에 브로드웨이의 유명 작곡가인 프랭크 와일드혼, 연출가 가브리엘 베리, 무대디자인 데이빗 갈로 등 일급 스태프로 진용을 꾸려 팬들의 큰 기대를 모았다.
베일을 벗은 결과 평단과 팬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음악적 구성과 무대, 배우들의 연기는 그런대로 합격점을 받았지만 스토리에 대해 실망의 목소리가 크다.
'천국의 눈물'은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나이트클럽 가수로 일하는 베트남처녀 린을 사이에 두고 한국군 병사 준과 미군 장교가 벌이는 운명적인 3각 관계가 축을 이루고 있다. 장교의 여인이었던 린은 준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미국행 비자에 눈이 먼 린의 친구 쿠엔은 이 사실을 장교에게 귀띔하고 장교는 준을 살아돌아오기 힘든 작전에 투입한다. 준이 죽은 줄 알고 미국에 온 린은 장교를 만나지만 장교는 그녀가 준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고 그녀를 버린다.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된 준이 딸 티아나를 만나 모든 이야기를 해주고 쿠엔을 용서하는 마지막 장면 역시 자연스럽지 않다.
사랑과 배신, 용서의 테마 속에 이야기는 흘러가지만 지나치게 구식이고 인물들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눈물을 자극하는 '최루성' 멜로라는 면에서 60,70년대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왜 이런 결과물이 나왔을까.
작가가 대만계 미국인인 피비 황이라는 점이 시선을 모은다. 동양의 핏줄을 이어받았지만 서양문화에 익숙한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오히려 동양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지닐 수 있다. 박근영 박사(분당제생병원)는 "극본 집필에 제작사나 투자사의 요구가 반영됐을 수도 있다"고 전제하면서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친족을 통해 접하게 된 뿌리에 대해 호응과 순응의 양면적인 태도가 섞이면서 오히려 '아시아=눈물, 한(恨)'이라는 공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웨인 왕 감독의 히트영화 '조이럭 클럽'(1993)은 이같은 사실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1940년대 가난과 핍박을 피해 샌프란시스코로 이민온 중국인들. 낯선 곳에서 온갖 고생끝에 자식들을 키우지만 미국사회에서 성장한 딸들과 문화와 가치관의 심각한 충돌을 겪는다. 한국계 미국인들의 수많은 사례를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시각은 흔히 '오리엔탈리즘'으로 표현된다. 서양의 입맛대로 채색된 동양의 이미지는 공연계에서도 이미 19세기부터 등장했다. 아시아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고증없이 하나의 모티브로 활용해온 오랜 전통이 있다. 가까운 예로 '천국의 눈물'과 비슷하게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1989년 초연됐을 때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을 정당화한다'는 비판과 함께 오리엔탈리즘 논란이 제기됐었다.
뿌리가 동양임에도 서양에 더 익숙한 아시아계 2세, 3세 미국인들 역시 또다른 오리엔탈리즘의 생산자가 될 수도 있음을 '천국의 눈물'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