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클랩튼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혹시… 서울 공연에도 김정철(김정일의 둘째 아들)이 오는건 아닌가요?"

입력 : 2011.02.19 00:46

싱가포르 공연때 경호원·취재진 실랑이로 공연장 분위기 망쳐놓고…
정치 문제로도 번져 부담감
北, 열광적 팬인 정철 위해 관객 15만명 들어가는 '아리랑' 무대서 공연 추진…
성사 직전 클랩튼이 틀어

15일 오전 서울에 있는 공연기획사 나인엔터테인먼트 김형일 사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20일 저녁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릴 영국 출신 거장(巨匠)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Clapton)의 내한공연 준비에 정신이 없던 참이었다. 상대편은 클랩튼의 매니저였다.

"이곳 준비는 잘 되고 있는데, 무슨 일이신지."(김 사장)

"하나 확인할 게 있어서요. 혹시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마음대로 올 수 있습니까."(클랩튼 매니저)

"그렇지 않습니다. 갑자기 왜 그런걸…."

일러스트=김현지 기자 gee@chosun.com
일러스트=김현지 기자 gee@chosun.com
"실은 어제(14일) 밤 클랩튼이 싱가포르에서 공연했는데 (북한 김정일의 둘째아들) 김정철이 왔었습니다. 분위기가 많이 어수선했습니다. 장내 정리도 잘 안 됐고요. 언론들이 공연 중에 김정철을 취재해서 관객이 많이 불편해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철을 따라다니는 사람들만 20여명이나 됐어요. 그냥 관객이 뮤지션 공연을 편안하게 감상하게 놔뒀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또 북한 사람(김정철)이 서울 공연에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물어봅니다."

"그런 일이 있었나요?(김정철의 싱가포르 공연 관람 사실은 15일 밤 국내에 알려졌다) 김정철이 한국에 오기는 힘들 겁니다. 내 생각에는 그가 혹시 (18일 클랩튼의) 홍콩 공연에는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정철이) 마카오에 머무는 걸로 알려져 있으니 말이에요."

"네, 일단 알겠습니다."

김 사장이 18일 본지 기자에게 전한 이 대화 내용을 보면 클랩튼이 김정철의 공연장 출현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공연계 관계자들은 이날 매니저의 전화도 클랩튼이 시켜서 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싱가포르 공연 현장에선 김정철이 공연장에 들어설 때부터 취재진과 경호진 사이에 승강이가 있었고, 공연 내내 일본 취재진 등이 김정철과 주변 인물들을 촬영하기도 했다. 당연히 공연장 분위기가 산만했을 수밖에 없다. 이러니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언제나 완벽한 공연을 추구하는 클랩튼으로선 관객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을 것"이라는 얘기다. 아버지(김정일)는 핵무기로 국제 사회에 '민폐(民弊)'를 끼치더니 그의 아들은 '기타의 제왕'의 공연 분위기를 망치며 또 다른 민폐를 끼치고 있는 셈이다.

공연장 승강이… 14일 에릭 클랩튼의 싱가포르 공연장을 찾은 김정일의 차남 김정철(원 안). 경호원들이 취재 카메라를 손으로 막으며 승강이를 하고 있다. /KBS
공연장 승강이… 14일 에릭 클랩튼의 싱가포르 공연장을 찾은 김정일의 차남 김정철(원 안). 경호원들이 취재 카메라를 손으로 막으며 승강이를 하고 있다. /KBS
클랩튼측과 오랜 친분을 다져온 김 사장에 따르면 클랩튼은 김정철이 자신의 팬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한다. "클랩튼은 2006년 독일 투어 때 4차례 공연을 모두 관람한 정철의 모습도 현장에서 확인했다"는 전언이다.

김정철의 '에릭 클랩튼 앓이'는 어느 정도일까? 김 사장에 따르면 북한측은 2006년 "김정철의 희망에 의해 추진되는 일"이라는 비공식 설명과 함께 클랩튼의 평양 공연을 남측에 제안해 왔다. 한 방송사와 김 사장측이 클랩튼측과 협의를 벌여 2007년 초 클랩튼을 포함한 모든 연주진·스태프가 북한 당국으로부터 신변 안전 보장 각서를 받을 정도로 진전을 이뤘다. 공연장도 평양 능라도 경기장으로 정해졌다. 북한의 대표적 집체극 '아리랑'이 공연되는 15만명 수용의 운동장이다. 그런데 막판에 클랩튼이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자신이 '폭압 통치체제에서 공연하게 될 첫 유명 뮤지션'으로 기록되리라는 점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러자 북한은 남측 채널에 "다른 해외 뮤지션들이라도 보내달라"고 했고, 유명 록밴드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와 뉴에이지 뮤지션 야니(Yanni)가 평양행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북측이 "롤링 스톤즈는 너무 퇴폐적이고 야니는 한물간 게 아니냐"며 꺼려 모두 불발됐다.

김정철의 에릭 클랩튼 공연 관람 소식이 알려진 뒤 클랩튼의 서울 공연에 대한 국내의 관심도 덩달아 커졌다. 김정철 관련 뉴스가 나간 직후부터 기획사측에 표구입 문의 전화가 수십통씩 걸려왔다고 한다. 6만~18만원에 이미 매진된 티켓이 온라인에서 30만원 이상에 거래되고 있기도 하다. 에릭 클랩튼은 19일 오후 서울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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