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인지 현실인지 도대체 모르겠네…연극 ‘해님지고 달님안고’

입력 : 2011.02.18 18:16



몽환·기묘한 분위기로
인간 성장 그린 창작극

오달수 코믹함 버리고
박성연과 부녀로 호흡

[이브닝신문/OSEN=오현주기자]  “여기가 도깨비 늪이야? 여기만 넘으면 세상이야?” 재 넘어 세상을 향한 아이의 눈에는 갈망이 넘친다. 보이지 않는 저기, 가보지 않은 그곳에 가려 한다. 하지만 아비는 아이의 그 시선이 두렵다. “그렇게 가봐라. 세상 나가서도 볼 건 불빛 한 점 없어. 애비 모습 뵈지도 않는 시꺼먼 여기뿐일 걸. 갈 테면 가봐.” 하지만 아비의 우려가 아이의 욕구를 막지는 못했다. 그리고 “길을 잃으면 눈을 잃는다”는 아비의 암시는 아이의 처지로 옮겨왔다. 경계와 혼돈을 지나야 이를 수 있는 인간의 성장을 기묘한 분위기로 그려낸 창작극 ‘해님지고 달님안고’다.
 
세상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숲 속의 도깨비 늪, 한 떼의 도깨비들이 수근 거린다. 점점 요란스러워지기 시작하더니 말로만 듣던 도깨비잔치가 열린다. 방망이를 휘두르며 ‘뚝딱’.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건 금과 은이 아니다. “지금만 같아라 뚝딱.” 그들은 만월을 보고 있다. 휘영한 달빛이 내리비추고 있는 ‘지금’을 기원한다. 그들은 월식이 두렵다.
도깨비 늪보다 더 깊숙한 숲 속, 마누라가 도망간 후 딸아이와 살고 있는 황 노인이 있다. 아이는 집나갔다는 애미, 한 번도 보지 못한 세상이 궁금하고, 아비는 그 아이의 궁금증이 무섭다. 밭일을 해도 묶어두고 어디를 가든 업고 다닐 정도로 그는 아이에게 병적인 집착을 보인다.

연극 ‘해님지고 달님안고’는 모호하다. 그때와 그곳이 언제 어디쯤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누가 죽고 누가 살아있는 건지, 모든 것이 정말 도깨비놀음인지 정제되지 않은 혼란을 흩뜨려 놓는다. 이 극도의 혼돈은 어느 날 아비와 아이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면서 절정에 이른다. 세상 보기를 막는 아비의 구속에서 벗어나려 애쓰던 아이가 아비의 목을 조르게 된 것. 그때부터 아이는 앞을 볼 수 없는 암흑에 갇히고 아비는 죽기도 했고 살기도 한 상태가 된다. 하지만 아비를 죽인 눈먼 아이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작품의 구도는 크게 두 가지다. 도깨비의 세계와 아비와 아이의 세계. 양끝은 숲 속 도깨비 늪을 경계로 오버랩되며 묶여있는 아이와 묶은 아비 사이에 도깨비들의 개입을 시도한다. “용이 달을 다 먹기 위해 솟구치려면 어린 아이가 필요하다”는 도깨비의 주문 한 켠에서 아이는 아비를 붙들고 “도망갔다는 애미가 뭐야?”고 묻는다. 그리고 아이는 성장해간다. 분위기는 몽환적이고 이야기는 기이하다. 하지만 여기서 굳이 논리를 따질 필요는 없다.

배우 오달수가 무대로 돌아와 아비 역으로 출연한다. 코믹 이미지를 완전히 버렸다. 집나간 애미로 인해 더욱 아이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아비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아이 역은 박성연이 맡아 맑은 눈으로 반쯤 정신 나간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여기에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 등을 연출하며 늘 언어와 텍스트의 표상에 골몰하는 연출가 성기웅이 ‘쉬운 것도 어렵게 풀어낸다’는 작가 동이향과 뭉쳤다. 작품은 2007년 국립극장 창작공모에서 당선된 작품이다. 서울 동숭동 대학로문화공간 이다 2관에서 27일까지 볼 수 있다.

euanoh@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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