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자씨의 격정 토로]
"연극 人生 50년… 아직도 경제적 자유 없어… 특별 대우가 아니라 他직업군과 형평성 바랄뿐"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연극배우 박정자(69)씨가 연극인들의 생존권을 두고 뜨거운 말을 쏟아냈다. 17일 오후 서울 동숭동의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박씨는 "사업자 등록이 되어 있는 일부 극단이나 단체 소속을 제외하고 연극인들은 대부분 4대 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다"면서 "연극인들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을 근로자로 인정하는 예술인복지법이 연내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앞서 이날 오전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열린 '2011년 예술정책 대국민 업무 보고'에 토론자로 참석, 정병국 장관 면전에서 "2008년 7월 43세의 배우가 간경화 3기로 주거용 컨테이너에서 사망했고, 같은 해 5월 65세의 배우가 다른 곳에선 암 치료할 돈이 없어 연극인들에게 진료비 혜택을 줬던 병원에서 그나마 치료를 좀 받다가 사망했다"고 적나라하게 말했다.
시인 신용목씨는 이날 토론회에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 사건 이후로 패닉 상태"라며 자기 얘기를 털어놨다. 신씨는 "10년 전 생명보험을 들면서 직업이 '시인'이라고 했더니 '위험 직군이라 보험료가 비싸다'고 하길래 '차라리 백수라고 해달라'고 했다"면서 "결국은 '취업준비생'으로 해서 보험료를 낮췄다. 그때부터 '시인=백수'라고 생각해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해당 보험사는 "상해보험과 일부 특약이 있는 생명보험 상품에서 육체적 활동이 많은 '위험 직군'에 대해 보험료가 비싸질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통상 시인은 '사무직'으로 분류돼 보험료가 비싸게 책정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자존심 강한 예술인들이 이렇게 '돈' 문제를 대놓고 얘기하는 것은 그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예술인 생존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자 일부에서는 "왜 자기가 선택해 예술을 하는 사람을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야 하는가"라는 반론도 나오는 상황. 이에 대해 박정자씨는 "좋아서 하는 사람은 밥도 안 먹느냐. 우리가 예술인이라는 이유로 특별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도 엄연히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니 다른 직업군과 형평성을 맞춰달라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박씨는 "한국협회에 등록된 연극인들만 전국에 6000~7000명이 되는데 이들 대부분에게는 뚜렷한 소속이 없다. 그러니 고용보험·산재보험은 당연히 적용이 안 되고, 국민연금은 임의 가입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소득이 없으니까 신청을 안 하는 거다. 건강보험은 지역 가입자로 의무 가입이 되어 있지만 직장 가입자보다 보험료가 평균 1.5배 비싸 보험료를 못 내는 사람도 많다"고 지적했다. 김석진(38)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사무국장은 "2008년 연극인 15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월평균 수입이 36만1000원으로 나타났다"면서 "보험료 부담이 커 일반 보험사의 건강 보험상품 가입은 꿈도 못 꾼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대표적 연극배우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예술인복지법이 발효·적용되면 우리는 조금이라도 이 사회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자존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