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연극판 철밥통 깨니 관객 우르르 몰렸다

입력 : 2011.02.10 00:55

국립극단의 부활… 10년만에 '매진 행렬', 월급쟁이 배우 23명 없애고 전면 경쟁
경쟁… '짬밥順' 주연 맡다가… 오디션으로 배우 뽑아
마케팅… 편당 1000만원 홍보비 3~4배로 과감히 올려
감동… "무릎 꿇고 겸손하게" 모든 것 관객에 맞춰

예산은 정부가 대줬다. 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1950년 생긴 직후부터 꽤 오랫동안 '연극의 메카'였으나, 민간 극단에 비해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됐다. 활력을 잃었고, 적자투성이였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국립극단(예술감독 손진책) 연극이 매진됐다. 2001년 김석훈이 주연한 '햄릿' 이후 10년 만이다. 국립극장 전속단체에서 지난해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국립극단의 창단작 '오이디푸스'(연출 한태숙)는 공연 비수기에 무거운 비극을 골랐지만 13일 폐막 공연까지 표가 다 팔렸다. 8800장이다. 입소문을 타며 명동예술극장으로 보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하자, 시야 장애 때문에 닫았던 3층 객석(100석)을 8일부터 개방했다. 존재감이 미미했던 국립극단의 화려한 부활이다.

국립극단 연극‘오이디푸스’를 연출한 한태숙.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국립극단 연극‘오이디푸스’를 연출한 한태숙.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국립극단의 체질 개선

'오이디푸스'는 제작 방식부터 과거와는 달랐다. 국립극장 시절 국립극단은 공연을 올려도 객석의 3분의 1 이상을 판매하기 어려웠다. 또 지난해 초 기준으로 월급을 받는 정단원 23명의 평균 연령은 53.2세로 고령화돼 있었다. 20대가 맡아야 할 배역을 나이 든 배우들이 맡았다. 주연은 '짬밥 순'이었다. 국립극장 시절인 2009년 연극 '둥둥 낙랑둥'의 경우 호동 왕자 역을 42세 배우가, 낙랑 공주 역을 37세 배우가 맡아 관객이 몰입하기 힘들었다. 국립극단 전 단원 우상전은 "배우에게 만능이란 환상이고 어울리는 배역이 있기 마련"이라면서 "정단원제는 옷에 몸을 맞추는 꼴이었다"고 말했다. "경쟁이 없어 예술적 긴장을 잃었다" "제한된 배우들이 국립극단을 장기 독점하는 구조로는 미래가 없다" 같은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8월 재단법인으로 새로 출범한 국립극단은 '철밥통' 단원제부터 수술했다. 현재 단원은 장민호·백성희 두 원로배우뿐이다. 공연을 할 때마다 적당한 배우를 오디션으로 뽑아 쓴다. 자생력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제작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졌고 홍보도 강화했다. 입소문을 내기 위해 국립극단 사상 처음으로 프리뷰 공연(1만원 균일가)을 두 번 올렸다. 국립극단 관계자는 "'오이디푸스'는 최적의 배우와 스태프를 선발해 개막 9일 전부터 실제 무대에서 연습했다. 개막 공연을 리허설로 삼았던 과거와는 달라진 점"이라면서 "국립극장 시절 편당 1000만원이었던 홍보비를 3~4배 올린 것도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 요카스타 역을 맡아 호평받은 서이숙은 "바라던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라 연습 2시간 전부터 모일 정도로 열의가 대단했다"고 했다. 8일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연출가 한태숙은 "'내 몸 다 드릴 테니 쓰시오' 하는 배우들만 모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주자 원일씨가 부친상을 당했어요. 배우들이 매일 공연 직전 모여서 파이팅을 외치는데 그날은 묵념을 했고 원일씨는 엉엉 울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추적하는 이 극 속에 우리가 들어와 있어요. 미치광이들처럼."

"어깨에 힘을 빼고"

'오이디푸스'의 가장 값진 수확은 대중과 평단 모두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의 균형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마니아와 일반 관객 사이의 갭(gap)을 없앤다. 한태숙에게 그 비결을 캐물었다.

"'무릎 꿇고 겸손하게 가자, 친절하게' 하는 생각이었어요. 희랍비극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연극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묵직한 비극을 현대적으로 풀었다. 배우들은 경사 11도의 삼각형 무대 위에서 움직이거나 높이 9.5m인 수직의 절벽 구조물에 매달려 있다. 그들의 연기에 이영란의 분필 그림, 원일의 구음(口音)과 아쟁 연주, 현대무용가 이경은의 움직임이 더해진다. 500석이 넘는 중극장 무대에서 미학을 보여준 드문 사례다. 한태숙은 실험성이 강한 연출가다. '레이디 맥베스' 등에서 그는 이야기를 비틀거나 음악·미술 등으로 다른 시선과 에너지를 보여줬다. 이 연출가도 태도를 바꿨다. 한태숙은 "이번엔 어깨 힘을 뺐다"고 했다.


☞ 연극 ‘오이디푸스’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이상직)는 만연하는 역병(疫病)과 싸우고 있다. 크레온(정동환)이 받아온 신탁(神託)은 “오랜 죄악으로 나라가 오염됐다”고 말한다. 예언자 테레시아스(박정자)가 오이디푸스에게 “두려움을 모르는군. 눈먼 자는 당신이오!”라고 경고하듯이, 재앙의 뿌리는 오이디푸스 자신이다. 그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연극은 요망한 뱀처럼 요동친다. 드라마를 100분으로 압축해 묵직한 연극이지만 지루하지 않다. 한태숙은 이 연극의 의미를 “‘오이디푸스’의 본질은 누구도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를 모성 콤플렉스의 소유자로 해석하기도 했다.
해당 기사의 키워드 목록 :
오늘의 세상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