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가문의 영광… 父女 국립중앙박물관장 나왔다

입력 : 2011.02.09 03:34   |   수정 : 2011.02.09 17:44

신임 김영나 관장 진기록
아버지 故 김재원 박사도 초대 관장 맡아 25년간 헌신
"선친이 일군 일 잇게 돼 기뻐"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이미 국립중앙박물관장이셨어요. 코흘리개 시절부터 박물관을 우리 집처럼 드나들었죠. 그때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덕수궁 석조전 건물에 있었는데 덕수궁 연못으로 스케이트를 타러 가서 흘끗 박물관을 들여다보면 아버지는 전시 준비에 바빠 제가 온 것도 모르시곤 했죠. 아버지가 평생 일궈놓으신 그 일을 이제 막내딸이 잇게 됐네요."

김영나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은“집에 찾아온 외국 박물관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르며 박물관 비즈니스를 알게 됐다”고 했다. 작은 흑백 사진은 초대 국립박물관장이자 김 관장의 아버지인 고(故) 김재원 박사. 김 관장이 8일 국립중앙박물관장에 내정되면서 첫‘부녀(父女) 관장’이 탄생했다. /이기원 기자 kiwiyi@chosun.com
8일 국립중앙박물관장에 내정된 김영나(60)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아버지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이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김 관장은 초대 국립박물관장인 고(故) 김재원(1909~1990) 박사의 셋째딸로, 우리 박물관 역사상 최초의 부녀(父女) 국립중앙박물관장 기록을 세우게 됐다. 큰언니는 불교조각 연구의 권위자인 김리나(69) 홍익대 명예교수. '미술사(美術史) 가족'이다. 2007년에는 자매가 나란히 문화재위원으로 위촉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선친인 김재원 박사는 1945년부터 1970년 퇴임할 때까지 무려 25년간 국립중앙박물관장직을 맡았다. 광복과 미 군정, 6·25전쟁 등의 열악한 시대를 살면서 박물관 유물을 지키고, 키워냈다. '박물관'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할 때였다. 김재원 박사는 또 미군이 군용막사를 짓는 과정에서 경복궁을 파헤친 사실을 알려 미 군정(軍政)으로부터 곤욕을 치른 일화로 유명하다. 그는 함남 함흥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독일 뮌헨대에서 교육학·고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 박사는 전화를 받으면 언제나 '김재원입니다'라는 말 대신 '박물관입니다'라고 응답을 해, 친구들로부터 '아, 당신이 박물관이오?'하는 핀잔에 가까운 농담까지 들을 정도였다. 김 박사는 박물관을 통해 최순우·김원룡·안휘준과 같은 숱한 인재를 키워냈다. 안휘준 전 문화재위원장은 "애지중지 아끼시던 막내딸이 선생님 뒤를 이어 박물관을 이끌게 됐으니 지하에서 얼마나 좋아하실까 싶다"고 했다.

'박물관 딸' 김영나가 미술사를 전공하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어린 시절 집안 가득 꽂혀 있던 미술책들 틈에서 미술사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게 김 관장의 얘기. 김 박사는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면서 '국제인(國際人)이 돼야 한다'며 막내딸을 데리고 갔다. 김 관장은 미국 물렌버그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3~05년 여성 최초로 서울대 박물관장을 지냈다.

하지만 박물관 안팎에서는 서양 근현대미술사를 전공한 김 교수가 박물관의 수장이 된 데 대해 뜻밖이라는 반응이 적잖다. 언니 김리나 교수는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동생이 보다 넓은 시야에서 동·서양 미술을 접목해 글로벌한 국립박물관을 운영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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