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1.30 15:45
"운명 앞에서 우리 모두는 장님이다."
절대군주도 운명을 피해갈 수는 없다. 온 나라를 절망으로 몰고간 횡액, 그 원인을 추적해나가는 오이디푸스는 마침내 자신이 '주범'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백성들의 절규 속에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돌로 찧는다. 얼굴은 피범벅이 되고 그는 가혹한 신탁을 수용하면서 운명에 항거한다.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국립극단의 '오이디푸스'(연출 한태숙)는 오랜만에 정통 그리스비극의 참맛을 보여준다. 패러디와 재해석이 난무하는 요즘 이런 작품을 만나면 속이 후련하다. '레이디 맥베스' '리처드 3세'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구현해온 한태숙은 소포클레스 원작을 시공간을 초월해 새롭게 탄생시켰다.
무대 오른쪽에 놓인 거대한 벽, 이영란의 물체극, 정동환 박정자 등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배우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원일의 음악. 한태숙 연출은 자신의 자산을 다시한번 100% 활용하면서 소포클레스, 나아가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벽을 기어오르는 백성들이 뿜어내는 그로테스크하면서 암울한 분위기 속에 가슴을 후벼파는 시적인 대사들, 중견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앙상블이 뜨거운 에너지를 발산한다.
오이디푸스를 소화한 중견배우 이상직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당당한 왕의 권위를 보여주다 점차 고뇌와 불안에 빠지는 오이디푸스를 '더이상 잘하기 힘들 만큼' 실감나게 재현했다. 정체성을 찾아 고민하는 인간의 표상을 비장하게 보여준다. 왕비 이오카스테 역의 서이숙, 중신 크레온 역의 정동환, 예언가 티레시아스 역의 박정자는 한치의 양보없는 연기대결 속에 강렬한 파워로 객석을 압도한다. 13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