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의 오픈스테이지] 뮤지컬 배우들, 드라마 접수하다

입력 : 2011.01.27 10:49
◇'미친 존재감'의 배우 이병준
◇'미친 존재감'의 배우 이병준
지난 90년대 후반 서울시뮤지컬단에 눈길을 끄는 배우가 한 명 있었다. 주역이 아닌 조연이었지만 목소리가 하도 굵고 능청맞은 코믹연기를 잘해 한 눈에 확 들어왔다. 어린이 뮤지컬을 할 때면 주로 괴물 역을 맡았는데 무대에서 '으허허허~'하고 고함을 지르면 어린이 관객들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러대곤 했다.

그가 바로 요즘 TV드라마에서 '미친 존재감'으로 스타덤에 오른 이병준이다.
최근엔 드라마 '드림하이'에서 기린예고 교장을 맡아 특유의 개성을 발휘하고 있다. '드림하이'에 앞서 화제작 '시크릿 가든'에선 현빈에게 야단맞던 박상무, '공부의 신'에선 혀를 심하게 굴리던 영어교사 앤써니를 맡아 시청자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 친근감있는 외모, 능청맞은 연기 등 감초 역으로는 딱이기 때문이다.

그를 볼 때마다 옛날 괴물 생각이 나 웃음이 나곤한다. 아울러 주머니 속의 송곳이 옷을 뚫고 나오듯 오랜 세월 쌓인 내공이 이제 빛을 보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병준처럼 뮤지컬 출신으로 드라마와 영화에서 맹활약하는 배우는 하나둘이 아니다.

'드림하이'에 함께 출연하는 교사 강오혁 역의 엄기준 또한 뮤지컬 스타 배우다. '사랑은 비를 타고' '김종욱 찾기' 등에 이어 '삼총사' 에서 주역을 맡아 맹활약하고 있다. 가창력과 연기력, 춤 실력 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사실 그가 드라마속에서 실기를 가르쳐도 무방하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평양성'으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류승룡의 경력도 특이하다. 넌버벌퍼포먼스 '난타'의 1대 멤버다. 제작사에서 지금도 쓰고 있는 '난타'의 초기 포스터에서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 드라마 '특별수사대 MSS'의 오만석, '이웃집 웬수'에 출연했던 신성록, '제빵왕 김탁구'에서 구마준 역을 맡은 주원 등도 다 이 바닥 출신들이다. 중견배우 박해미 김선경을 비롯해 '나는 전설이다'에서 강력한 포스를 발휘했던 홍지민 등도 여전히 뮤지컬과 TV를 병행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영화와 드라마에 배우를 '공급'하던 장르는 대학로 연극계였다. 그러다 2000년 이후 뮤지컬이 붐을 이루면서 수많은 자원들이 몰리고 나름 배우그룹이 형성되자 뮤지컬이 연극을 대신해 스타탄생의 산실로 자리잡는 양상이다. 항상 배우가 부족하고 새 얼굴을 찾고 있는 드라마와 영화계에서 노래와 춤, 연기력을 갖춘 뮤지컬 배우들이야말로 '준비된 스타'들이기 때문이다. 뮤지컬배우들에게는 또 대중적인 감각과 끼가 있다. 드라마 PD와 영화감독들이 자주 공연장을 찾는 것은 단지 뮤지컬을 즐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뮤지컬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크게 달가와하지 않는 시선도 있다. 뮤지컬계도 사실 배우가 많지 않은데 기껏 키워놓으면 드라마와 영화로 가버리니 난감하다는 것이다. 그게 결국 더블, 트리플 캐스팅으로 이어지고 공연의 질 하락을 야기한다는 지적이다. 얼마 전 만난 한 제작자는 "훨씬 대우가 좋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면서도 "뮤지컬계로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배우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되니 나쁜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어찌됐건 배우들의 장르간 이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역으로 영화와 드라마 스타들의 연극, 뮤지컬 진출도 활발해지고 있다. 뮤지컬 출신 스타들의 탄생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엔터테인먼트팀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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