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를 말한다] '말러 붐' 불붙인 이 남자, 이번엔 브람스 띄울까

입력 : 2011.01.26 23:33

부천시립교향악단 지휘자 임헌정
국내 최장수 예술감독…
"부천시향, 管은 좀 약해도 絃만큼은
최고 수준… 노래하듯 연주할 것"

"브람스는 오래 묵은, 좋은 포도주 같다. 연주하면 할수록 새롭다."

지휘자 임헌정(58·서울대 교수)이 이끄는 부천시립교향악단이 3월부터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브람스 교향곡 전곡 연주(총 4회)에 나선다. 예술의전당이 작년 시작한 3B(베토벤·브람스·바흐) 시리즈의 하나다. 1999~2003년 말러 교향곡 전곡을 완주(完奏)하면서 '말러 붐'을 일으켰던 임헌정의 브람스는 어떤 빛깔일까.

임헌정은 '노래하듯이' 연주하겠다고 말한다.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도 교향곡처럼 쓴 교향곡 작곡가이고, 모차르트는 오페라 작곡가로 기억한다. 반면 슈만·브람스·말러는 타고난 독일 가곡 작곡가다." 임헌정은 브람스 악보를 들여다보며 "마음속으로 노래를 불러본다"고 했다.

작년 11월 내한한 마리스 얀손스의 로열콘세르트허바우가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연주했을 때, 임헌정은 기자 앞자리에 앉았다. "그 연주는 오케스트라가 잘 안 맞았다. 그런데 관객들은 기립박수까지 치면서 열광했다. 좀 당황스러웠다." 그런 임헌정도 2008년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 필이 들려준 브람스 교향곡은 "대단했다"고 높이 평가한다.

임헌정은“22년 전 처음 부임했을 때는 스무 명 남짓한 단원들과 난롯불을 지펴가며 연습했다”고 말했다. /부천시향 제공
임헌정은“22년 전 처음 부임했을 때는 스무 명 남짓한 단원들과 난롯불을 지펴가며 연습했다”고 말했다. /부천시향 제공

작년과 올해 말러 탄생 150주년과 타계 100주년을 맞아 서울시향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오케스트라가 그를 경쟁하듯 올리고 있다. 국내의 말러 붐을 선도했던 임헌정의 부천시향이 침묵하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임헌정은 "77명밖에 안 되는 단원으로는 공연 때마다 20~30명씩 객원단원을 불러야 하는 것이 버겁다. 악장도 공석이고, 첼로와 플루트 수석도 비어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는 "대신 내후년에는 해마다 말러를 1·2개씩 올리려고 한다"고 했다. 2007년 시작한 브루크너 교향곡 시리즈는 내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7번과 8번을 공연하면서 마무리할 계획이다.

1989년 서른여섯에 부천시향에 부임한 임헌정은 국내 최장수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이 지난 지도 오래다. 부천시향의 연주력을 자평(自評)해달라는 주문에 "현(絃)은 톱 클래스다. 관(管)은 좀 약하지만…"이라고 했다. 그에게 뛰어난 지휘자의 요건을 물었다.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는 선(禪)문답이 돌아왔다. "지휘자가 자기 색깔을 입히려는 욕심이 지나치면, 그게 바로 명예욕이다. 카라얀의 말러를 들으면 말러는 안 들리고 카라얀만 들린다. 번스타인의 말러는 번스타인은 안 들리고 말러만 들린다. 나에겐 번스타인의 말러가 최고다." 지휘자는 음악 수준에 관한 한 비타협적이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지휘자가 타협할수록 음악 수준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임헌정은 취임 20주년을 맞은 2009년 초 단원들 앞에서 "전용홀이 들어서면 사임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러나 2009년 완공 목표로 추진하던 부천시향 전용홀은 부지 선정까지 끝냈으나 진척이 없다. 그는 "부천시향에 너무 오래 있었고, 다른 곳에서 와달라는 요청도 있다. 전용홀 개관 때까지는 기다려보고, 그 뒤에 생각해봐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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