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12.22 03:06
돈키호테(이순재)는 한 손에 책, 다른 손엔 칼을 들고 등장한다. 몸은 구부정하고 머리칼은 하늘로 뻗어 있다. 의자에 앉아서도 말 타는 시늉을 할 만큼, 그는 정상이 아니다. 투구랍시고 냄비를 쓰고 창을 쥔 채 시종 산초(박용수)와 함께 떠난 돈키호테의 모험은 예상대로 좌충우돌이고 엉망진창이다. 그래도 그의 망상(妄想)과 터무니없는 행동은 밉지 않다. 종종 귀엽기까지 했다.
연극 '돈키호테'(연출 양정웅)는 세르반테스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빅토리앵 사르두(프랑스)가 쓴 희곡을 무대로 옮겼다. 풍차와의 싸움 등 돈키호테의 머릿속 환상이 무대에 펼쳐지는 장면들, 한 여인을 향한 카데니오(김영민)와 돈 페르난도(한윤춘)의 사랑싸움, 경쾌하고 부드러운 장면전환 등이 돋보였다. 하지만 고전(古典)의 아름다움이나 강렬한 무대언어를 바란 관객이라면 좀 심심할 수도 있다. 이 연극은 남녀노소 두루 즐길 수 있는 대중극에 가까웠다.
77세의 노장 이순재는 A급 연기를 보여주진 않지만 충분히 재미를 준다. 여인 둘시네아를 두고 어떤 마법사와 연적(戀敵) 관계라는 돈키호테의 낭만과 사랑, 정의감과 '착한 망상'이 반가웠다. 정해균·박용수·김영민·한윤춘·정규수 등 출연진의 앙상블이 믿음직스럽다. 하지만 노래가 나오는 장면은 좀 불안했다. 마지막엔 돈키호테의 긴 독백이 메아리쳤다.
▶1월 2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