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하라 히로미… 주말 강추위 녹여버린 日 천재 피아니스트

입력 : 2010.12.13 03:04

피아노를 쓸어내리고, 핥고 심지어 잡아 뜯고…

신동(神童)의 접신(接神) 현장을 보았다. 일본의 천재 피아니스트 우에하라 히로미(上原ひろみ·31)는 가공할 속도로 건반을 유린했다. 1940년대 초 뉴욕 재즈클럽 '민튼스 플레이하우스'에 나타난 델로니어스 몽크의 '문어발 주법'이란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1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그녀의 내한공연은, '거장(巨匠)' 반열에 오르기 직전 뮤지션의 생생한 라이브였다.

피아노를 연주할 때 히로미의 천진한 표정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하다. /마포아트센터 제공
피아노를 연주할 때 히로미의 천진한 표정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하다. /마포아트센터 제공

김동률의 버클리음대 동학(同學)이며 그의 음반에도 참여했다 해서 국내에 더 잘 알려진 그녀는, 피아노를 손으로 쓸어내리거나 핥거나 심지어 잡아 뜯었다. 스웨터에 레깅스, 스니커즈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히로미는 최근 내놓은 첫 피아노 솔로 앨범 'Place To Be' 수록곡 위주로 연주했다.

국내 재즈매거진 'MM재즈'와의 인터뷰에서 히로미는 "솔로 연주는 유도나 복싱처럼 모든 게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고 말했었다. 그 말처럼 그녀는 피아노의 안다리를 후리거나 메다꽂거나 10연타 왼손 잽에 이어 1t짜리 어퍼컷을 복부에 작렬시켰다. 이 자그마한 연주자 앞에서 거대한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는 풀피리보다 가벼운 악기로 전락했다.

왼손으로 건반을 치면서 오른손으로 피아노 현을 짚거나, 현 위에 쇠로 된 물체를 올려놓아 쳄발로 소리를 내는 잔재주는 그녀의 발랄한 상상력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왼손이었다. 오른손이 발전차(發電車)에 연결된 듯한 핑거링을 보여줄 때, 왼손은 마치 남의 손인 양 우직하게 리듬을 연주했다. 그녀가 하농(Hanon) 악보와 씨름해왔을 고되고 지겨운 시간의 총량을 이날 왼손 연주로 어림셈할 수 있었다.

2부에서 빨강 티셔츠와 빨강 스니커즈로 갈아입고 신은 히로미는 피아노를 생물(生物)처럼 또는 연인처럼 다뤘다. 줄곧 "으으음" 하는 허밍으로 자신의 연주를 따라가는 그녀의 무대가, 어떤 곡에서는 무척 선정적으로 느껴졌다. 3악장 형식의 자작곡 '비바 베가스'에서 슬롯머신을 피아노로 표현한 부분에서 객석은 합심해서 찬탄했다. 두 번째 앙코르에서 인기 자작곡 '톰과 제리'를 들려준 그녀는 어린아이 같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커튼 뒤로 사라졌다. 맹동(孟冬) 추위를 완전히 녹여버린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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