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12.02 03:03
깃발을 앞세우고 광대들이 들어온다. 고사(告祀) 풍경은 그대로다. 청년부터 할머니까지 소원 성취를 바라는 관객들은 시키지 않아도 돼지 입에 배추 잎(만원권)을 물리고 절을 한다. 나중엔 콧구멍에도 배추 잎이 꽂힌다. 하지만 세월은 흘러 "실팍지게 놀다 보니 만 30년"(김종엽)이요, "탱탱하던 청춘이 쪼글쪼글"(윤문식)이다. 마당놀이 '인간문화재' 윤문식·김성녀·김종엽의 고별무대라서인지 "오늘 오신 손님네 반갑소~"로 흐르는 합창이 더 애틋하게 번져왔다.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전'(연출 손진책)은 1981년부터 30년의 마당놀이를 한 줄로 꿰면서 종횡무진 달려나갔다. 이도령이 수능 끝나자마자 춘향을 보고 반하는 장면으로 열려 심청전·흥부전·변강쇠전·홍길동전·이춘풍전·별주부전 등을 지나 몽룡이 춘향과 재회하고 심봉사가 눈을 뜨는 해피엔딩으로 닫혔다. 윤문식은 방자·심봉사·변강쇠·이춘풍·토끼로, 김성녀는 몽룡·옹녀·홍길동·뺑덕어멈으로, 김종엽은 꼭두쇠·놀부·변사또로 부드럽게 변신해갔다. 30년 광대들이 차린 뷔페 같았다.
12×12m의 네모난 마당 앞에 둘러앉은 관객의 표정엔 웃음이 흥건했다. 심봉사 윤문식이 한 여성 관객에게 다가가 젖동냥하며 "젖 좀 주오. 있는 거 뻔히 아는데, 어디 있는지도 아는데, 그 양반 젖 인심 한번 고약하네!" 하는 장면처럼 무대·객석의 둑이 허물어질 때마다 박수가 밀려왔다. 교전규칙·4대강·세종시·공정사회·대포폰·영포라인·후원금·스폰서검사 등 최근 세상을 흔든 단어들을 써먹은 풍자도 재미있었다.
미추 배우들의 앙상블, 젊은 소리꾼들의 창(唱), 국악관현악과의 희극적 호흡이 믿음직스러웠다. 마지막 순간에 윤문식이 말한다. "우리 세 사람 떠나지만 백성 우습게 아는 위정자들이 있는 한 마당놀이는 영원히 계속될 겁니다." 닳아 해지기는커녕 더 찰떡궁합으로 마당을 쥐락펴락했던 윤문식·김성녀·김종엽의 마지막 인사는 "관객이 제일이여~"였다.
▶1월 2일까지 서울월드컵경기장 CGV 앞 천막극장. (02)747-5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