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영화 같은 오페라 '룰루'… 국립오페라단 오늘 첫 공연
무대위 넘치는 폭력·살인…
女주인공 소프라노 박은주, 소녀·주부·창녀로 변신하며 노래와 대사로 열정 뿜어내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이소영)이 25일부터 국내 초연하는 '룰루'는 스릴러 영화 같은 오페라다.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여주인공 '룰루'를 둘러싸고 폭력과 살인, 매춘이 숨 가쁘게 이어진다. 룰루가 정부(情夫)와 밀애를 나누는 장면을 보고 첫 남편은 심장마비로 죽는다. 재혼한 화가 남편은 룰루의 과거를 듣고 충격받아 자살한다. 세 번째 남편인 신문 편집장은 룰루의 행실에 분개해 룰루를 죽이려다 도리어 그녀가 쏜 총탄에 맞아 죽는다. 감옥에 갇혔다가 탈옥한 룰루는 런던 뒷골목의 창녀로 전전하다가 살인마 잭더리퍼의 칼에 난자당해 죽는다.

현대음악가 알반 베르크(Berg)가 1935년 작곡한 '룰루'는 현대인의 성(性)과 위선에 정면 도전한다. 이 작품의 중심은 네 명의 남자를 갈아치우며 소녀에서 주부, 무희, 창녀까지 연기하는 룰루다. 룰루 역을 맡은 소프라노 박은주(44)는 "다른 작품을 할 때보다 아드레날린이 훨씬 많이 나와야 하는 작품이라 연습이 끝나면 잠자리에 들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공연시간 2시간 25분 가운데 혼자서 1시간 50분 가까이 노래하거나 대사를 해야 하니 힘들지요. 상대 역 남자에 따라 분위기도 계속 바꿔야 하고요." 룰루는 피에로 의상과 세일러칼라 교복, 화사한 흰색 드레스와 낡은 망사 드레스 등 의상만 여덟 차례나 바꿔 입는다.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복잡하고 급작스러운 캐릭터 변화를 연기해야 하는 배역이다.
박은주는 지난 2007~2008년 시즌 독일 브레머하펜 극장에서 '룰루'를 맡아 탄탄한 발성과 호소력 짙은 고음으로 주목받았다. 이소영 감독이 그때부터 점 찍어두고 공들이다 이번에 캐스팅했다. 브레머하펜극장(1995~ 1999)과 도르트문트 오페라하우스(1999~2005) 주역 가수로 활약하면서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에서 콘스탄체 등을 맡았다.
박은주는 "룰루는 달콤한 사랑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룰루는 악녀이면서 순진한 여성이고, 가해자인 것 같으면서 피해자인 복잡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2막에서 자살을 강권하는 닥터 쇤을 죽이기 전에 룰루는 노래한다. "나는 세상이 바라는 대로 살아줬을 뿐이다." 남자들에게 버림받고 세상에 복수하는 룰루의 항변이다.
'룰루'는 한 옥타브 내 반음(半音)을 전부 사용하는 쇤베르크의 12음기법으로 작곡됐다. 반음과 불협화음이 이어지면서 불안과 초조를 불러일으킨다. "정신 사납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 번이 아니라 네 번 공연을 다 봐야 해요. 자꾸 들으면 '룰루'만큼 매력 있는 음악이 없어요." 박은주는 "처음엔 맛이 없지만 씹을수록 맛이 나는 건강한 음악"이라고 했다.
■'룰루' 공연 메모
독일 여성 연출가 크리스티나 부스(Wuss)가 연출을 맡고, 독일 출신 프랑크 크라머(Cramer)가 TIMF 앙상블을 지휘한다. 루카스 놀(Noll)이 디자인한 무대 중앙 13m 높이의 나무 모양 엘리베이터와 스크린 3개에서 나오는 영상도 주목할 만하다. 테너 김기찬(화가·흑인), 바리톤 사무엘 윤(쇤박사·살인마 잭더리퍼), 베이스 바리톤 조규희(쉬골흐), 베이스 손혜수(조련사) 등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는 성악가들이 나선다. 11월 25~28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