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우리 말고 또 누가…'…
"벌써 어떤 분은 하품, 어떤 분은 한숨을 쉬고 있군요. 여러분은 그것으로도 어떤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 두 발쯤 물러나서 제 말을 시작하겠습니다…."
관객은 어리둥절하다. 연극 '우리 말고 또 누가 우리와 같은 말을 했을까?'(연출 김동현)에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드라마도, 주인공도 없다. 재료는 입안에 침처럼 고이는 말[言] 자체다. 배우들은 한 명씩 나와서 이야기를 하곤 객석 맨 앞줄에 앉는다. 엄마와 다투고 나서 매운 낙지를 먹고 울며 화해했다는 여자, 어머니 성(姓)을 붙여 개명(改名)했는데 아직도 과거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남자, 스턴트맨 생활을 하며 부상 입을 때마다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했다는 남자, 트위터에서 '말의 홍수' '노출증'을 경험했다는 여자, 여자 친구의 고양이를 기르며 정을 붙였다가 이별과 함께 떠나보냈다는 남자….
사람이나 동물, 공간(극장)에 얽힌 말들이 무대에 차올랐다. 배우들과의 공동 창작으로 탄생한 이 연극에는 배우들이 겪은 사건이나 기억이 담겨 있었다. 분장하지 않은 배우의 민얼굴, 숨기거나 과장하지 않은 이야기와 만나는 셈이었다. 가끔 기타나 풍금 연주, 춤이 섞여 들어왔다. "배우의 몸은 무언가 걸쳐지길 바라는 빈 옷걸이이거나 무언가 채워지길 바라는 빈 옷일 수 있다"는 대사가 귀에 박혔다. 없음과 있음, 안과 밖을 이어주는 연극적 시도가 신선했다. 하지만 배우를 22명이나 쓴 점, 뒷부분이 늘어지는 점은 의아했다.
마지막 장면, 텅 빈 무대에서 여배우가 춤을 췄다. 그는 상의부터 양말까지 옷을 벗으면서 이동했고, 몸짓만으로 고요한 공간을 채워 나갔다. 조명은 점점 어두워지고 남는 건 침묵이었다. "남는 것은 침묵뿐"이라는 '햄릿'의 마지막 대사가 떠올랐다.
▶28일까지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070)8116-76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