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마린스키발레단 '지젤'… 느릿느릿 처연한 춤 속 폭발하는 사랑의 몸짓

입력 : 2010.11.11 03:01
푸른 조명과 안개로 시야가 뿌옇다. 무덤가에서 펼쳐지는 '지젤' 2막은 윌리(결혼 전에 죽은 처녀 유령)들이 미끄러지듯 등장하면서 열렸다. 길고 흰 로맨틱 튀튀를 입은 발레리나 24명이 한 몸으로 움직이며 기하학적 무늬를 찍어냈다. 지젤은 처음에 한없이 느리고 처연했다. 범접할 수 없는 에너지가 감돌았다.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았다.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내한 공연 '지젤'이 9일 경기도 고양아람누리에서 개막했다. 세계 5대 발레단으로 꼽히는 마린스키의 무용수들은 사랑의 무질서를 춤의 질서로 표현했다. 음악이 더 잘 '보이는' 무대였다. 아돌프 아당의 음악은 폭과 높낮이가 넓었다.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지젤’에서 2막 중 윌리들의 군무. 느리고 서정적이다. /고양문화재단 제공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지젤’에서 2막 중 윌리들의 군무. 느리고 서정적이다. /고양문화재단 제공
1841년 초연된 '지젤'은 낭만 발레의 대표작이다. 시골 처녀 지젤이 약혼녀가 있는 귀족 알브레히트의 정체를 모른 채 사랑에 빠지면서 비극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지젤의 꽃점이 '안 사랑해'로 끝날 때부터 비극은 예고돼 있다. 발랄했던 지젤이 사랑의 좌절과 함께 무너지며 방향성을 잃는 1막은 점점 어둡고, 윌리로 부활해 알브레히트와 재회하는 2막은 갈수록 밝다.

지젤 역을 맡은 마린스키 수석 무용수 빅토리아 테레쉬키나는 기술과 서정성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감정 진폭이 큰 배역을 견뎌냈다. 그녀는 생기 있는 소녀의 망설임부터 사랑이 무너지는 슬픔, 헛것으로 변해가는 몽롱한 몸짓, 알브레히트를 용서하는 대목까지 매끄럽게 소화하며 관객을 집중시켰다. 알브레히트의 높은 점프와 표현력, 윌리들의 군무(群舞)에도 마린스키다운 품격이 있었다.

마린스키발레단은 12~13일 같은 극장에서 '백조의 호수'를 공연한다. 마법에 걸려 밤에만 사람이 되는 백조 오데트와 지그프리트 왕자의 사랑 이야기다. 이 발레단의 간판스타 울라냐 로파트키나는 12일 무대에 오른다. 14일에는 마린스키에서 은퇴하는 무용수 유지연의 '빈사의 백조' 등으로 갈라 무대를 만든다. 1577-7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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