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의 불협화음] 브로드웨이의 '빌리'는 날 못 울렸지만…

입력 : 2010.10.21 03:17

[이지혜의 불협화음]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이지혜 작곡가
많은 외국 뮤지컬이 라이선스(공연권)를 얻은 국내 프로덕션에서 제작되고 있다. 한국어로 번역되면 좋은 점도 있지만 여러모로 어색해지기 때문에 라이선스 버전을 보고 오리지널보다 더 큰 감동을 느낀 적은 거의 없다. 아니, 실은 현재까지 '빌리 엘리어트'가 유일하다.

미국 브로드웨이의 '빌리 엘리어트'는 아쉬웠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너무 자라버린 변성기 소년은 안타깝게도 매력이 휘발된 듯했고 연기도 부족했다. 음악의 맛과 향기가 모자라 작곡하는 사람 입장에서 팔짱 끼고 본 탓도 있지만 기대를 많이 한 것에 비해 실망스러운 관람이었다.

그런데 한국 버전을 보러 갔다가 '그때 그거랑 같은 작품 맞아?' 할 정도로 하염없이 울고 나왔다. 우리나라 빌리는 진짜 아이이자 진짜 사람이었고 진실한 에너지로 넘쳤다. 등장하자마자 내 마음의 팔짱을 풀고 곳간 열쇠를 쥔 채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주인공이 드라마의 핵 역할을 해내자 비로소 천재적인 연출이며, 현대적이고도 아름다운 무대며 안무가 그 주변을 조화롭게 에워싸고 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 마음에 들지 않던 엘튼 존의 음악도 오히려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아 현명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뉴욕에서는 흘려 들은 '편지' 같은 노래도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며 마음에서부터 울고 있는 소년의 음성으로 들으니 예사롭지 않았다.

뮤지컬‘빌리 엘리어트’중 앵그리 댄스 장면. /매지스텔라 제공
뮤지컬‘빌리 엘리어트’중 앵그리 댄스 장면. /매지스텔라 제공
결국 공연이란 사람들이 모여 사람의 힘으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서 펼치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고, 에너지가 다하면 시들고, 죽기도 한다. 그 어떤 첨단 기술과 아이디어와 자본으로 제작한다 해도 인간의 땀과 눈물과 웃음을 담은 진짜 이야기가 중심에 없다면 공연이란 짝퉁 인간이나 마네킹처럼 허무할 것이다. 지금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는 파릇파릇하고 절실한 삶의 기운을 품은 아름다운 공연이다. 아이의 재롱 잔치가 아니라 진짜 인간의 드라마다. 아끼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

▶내년 2월까지 서울 LG아트센터.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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