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대서 키운 배우의 꿈...21년만에 뮤지컬 디바로 우뚝

입력 : 2010.10.18 22:19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 개척교회를 다녔다. 성가대원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 성가대에 윤복희가 있었다. 행운이었다. 소녀는 윤복희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 머지 않아 꿈을 이뤘다. 이제는 소녀들이 선망하는, 한국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최고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뮤지컬 디바' 최정원(41)이다.

최정원은 18일 '뮤지컬의 밤'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제16회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1년 '시카고'에 이어 '키스 미, 케이트'로 두번째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았다.

최정원은 87년 뮤지컬에 입문했다. 롯데월드 예술극장 1기 뮤지컬예술단원이 됐다. 뮤지컬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전이었다. 89년 '아가씨와 건달들'로 공식 데뷔했다. 첫 배역은 '6번 아가씨'였다. 그냥 하나의 숫자로 불리는 앙상블이었다. 95년 도약의 기회가 찾아왔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로 제1회 한국뮤지컬대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이후 최정원은 승승장구했다.

매년 2, 3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최정원은 춤과 노래, 연기력 3박자를 갖춘 만능 스타다. 게다가 나이를 두려하지도, 거스르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시카고'다. 최정원은 2001년 '시카고' 초연 때 젊은 여주인공 록시 하트로 출연해 도발적인 섹시미를 발산했다. 바람둥이 남편을 총으로 쏘아죽인 후 교도소에서 온갖 술수로 스타가 되는 인물이었다. 최근에는 록시 역을 옥주현에게 넘겨줬다. 그리고 록시에게 번번이 당하기만 하는 벨마 켈리로 출연하고 있다.

여배우가 주인공을 맡았던 작품의 조연으로 출연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 점에서 최정원의 변신은 화제를 모았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 '키스 미, 케이트'에서도 2001년 초연 때는 처녀인 비앙카로 출연했다가 이번에는 중년의 케이트로 자연스럽게 배역을 바꿨다. 최정원은 평소 "주인공만 고집하지 않는다. 내 나이와 환경에 맞는 배역을 고른다"고 말해왔다. 대표작 중 하나인 '맘마미아'에서는 아마추어 그룹 리드싱어 출신의 모텔 여주인 도나로 출연, 활달한 이미지를 보여줬다.

이 배역으로 전세계 '맘마미아' 출연자 대표들이 모인 스웨덴 공연에 참여했다. 연극 '버자니너 모놀로그', '피아프'에도 출연했다. 최정원은 20년 넘게 뮤지컬에 혼을 불사르고 있다. "무대에서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커튼콜을 받으며 무대를 내려올 때 최고의 환희를 느낀다. 그래서 "단 한번도 뮤지컬 배우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이런 열정이 '시카고', '맘마미아', '브로드웨이 42번가', '지킬 앤 하이드' 등 대작 뮤지컬의 히로인으로 활약하는 밑거름이 됐다.

화려한 수상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신인연기상(1995), 여우조연상(1996), 인기스타상(1997, 2002), 여우주연상(2001)을 휩쓸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최정원애게는 몇 가지 철칙이 있다. 공연장에 휴대폰을 가져가지 않는다. 가족들은 딸 수아가 아파도 연락하지 않는다. 반대로 최정원은 집에는 대본을 가져가지 않는다. 올빼미 생활 속에서도 딸의 아침을 꼭 챙겨준다. 이런 프로의식과 가족들의 협조가 20년 동안 뮤지컬 톱스타의 자리를 지켜온 비결이다. 가족과 같은 20년 단짝을 빼놓을 수 없다. 롯데월드 예술단 입단 동기인 남경원이다.

두 사람은 '아가씨와 건달들', '사랑은 비를 타고', '아이 러브 유', '키스 미 케이트' 등 14편의 작품에서 함께 공연했다.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남녀 뮤지컬 스타로 맹활약했다.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가 아니라, 눈빛을 보지 않아도 될 만큼 호흡이 잘 맞는다. 최정원은 두번째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뮤지컬 대표스타임을 재확인했다. 더 이룰 게 없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내가 고등학교 때 윤복희의 노래를 듣고 울었던 것처럼 누군가 내 노래를 듣고 눈물 흘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최정원의 아름다운 꿈은 포도알처럼 그윽하고 탐스럽게 익어간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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