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10.18 03:02
높이 5m의 책장들이 시야를 압도한다. 기와지붕처럼 촘촘히 악보(樂譜)들이 붙은 벽도 보인다. 한쪽에서는 피아노로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이 연주된다. 이 연극 '33개의 변주곡'(연출 김동현)은 이렇게 눈과 귀를 감염시키는 장치로 무대를 열었다.
주인공은 근육이 굳어가는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악성(樂聖) 베토벤(박지일) 말년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음악학자 캐서린(윤소정)이다. 베토벤은 왜 '구두수선공의 헝겊 조각'이라며 거절했던 디아벨리(이호성)의 왈츠곡에 집착해 변주곡을 33개나 만들었을까. 이 의문을 파헤치는 이야기는 21세기와 19세기를 오가며 차츰 두 시·공간을 중첩시킨다.
주인공은 근육이 굳어가는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악성(樂聖) 베토벤(박지일) 말년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음악학자 캐서린(윤소정)이다. 베토벤은 왜 '구두수선공의 헝겊 조각'이라며 거절했던 디아벨리(이호성)의 왈츠곡에 집착해 변주곡을 33개나 만들었을까. 이 의문을 파헤치는 이야기는 21세기와 19세기를 오가며 차츰 두 시·공간을 중첩시킨다.

이 연극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캐서린은 '6개월 시한부 생명' 판정을 받았고, 청력을 잃은 베토벤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괴로워한다. 둘의 마지막 여정이 겹쳐지는 셈이다. 곁가지로 캐서린과 딸 클라라(서은경)의 묵은 갈등, 클라라와 간호사 마이크(이승준)의 사랑이 뻗어나온다.
33개의 변주곡이 무대에 일렁였다. 캐서린은 독일 본에 있는 베토벤 하우스(문서보관소)로 가는 비행기에서 행진곡풍의 변주곡 11번을 듣는다. 변주곡 7번은 통증, 변주곡 8번은 유머, 변주곡 26번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찾아온다. 연극은 베토벤의 악보 스케치를 영상으로 클로즈업하며 최초에 가졌던 충동과 직관을 시각화한다. 관객은 어깨너머로 베토벤의 작업을 들여다본 기분이다.
'하얀 앵두'에 이어 김동현이 만든 또 하나의 웰메이드(well-made) 연극이다. 50초짜리 왈츠곡을 50분 길이로 늘어뜨리면서 삶을 변주한 베토벤의 작업, 콧노래로 출발해 춤과 논문발표로 이어지는 엔딩이 강렬했다. 윤소정은 길고 지적인 대사를 소화하며 관객을 몰입시켰고, 박지일은 휘몰아치는 카리스마로 다른 베토벤을 상상하기 어렵게 했다. 노래와 춤 솜씨는 아쉽지만 길해연·이호성·박수영·서은경·이승준 등의 앙상블도 믿음직했다.
▶11월 23일까지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1544-1555